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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좋은 글, 명언

60대 여성의 따뜻한 고백

by 작은집 큰행복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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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가장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잠시 멈춤, 깊게 숨을 쉰다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옆자리를 확인하게 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여보, 왔어"라고 인사할 준비를 하다가 빈 집의 정적에 마음이 먹먹해지곤 해요.

하지만 오늘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나누고 싶어요. 40년을 함께 살면서 쌓인 소중한 추억들을요.

 

처음 만난 건 1983년 봄이었어요. 친구 결혼식에서였죠. 저는 그때 스물다섯... 아직 총각이던 그 사람은 스물여섯이었고요.

 

정말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는데, 처음엔 별로 대화도 없었어요. 저는 내성적이었고, 그 사람도 말수가 적은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신부가 부케를 던질 때였어요. 모든 여자들이 앞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저는 뒤로 숨어 있었죠. 부끄러워서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제 옆에 와서 살며시 말하더라고요.

"괜찮으세요. 저도 총각이라 저런 거 어색해요."

 

그 한마디가... 참 따뜻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혹시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고 물어봤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먼저 청했네요. 그때는 여자가 먼저 그런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첫 데이트에서 우리는 3시간 동안 앉아서 이야기했어요. 서로의 꿈, 가족,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 사람은 제가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눈을 반짝이더라고요. 책을 좋아한다면서요.

 

6개월을 사귀는 동안... 정말 순수했어요. 손잡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고, 첫 키스는 사귄 지 3개월이 지나서야 했으니까요.

 

그 사람이 프러포즈한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벚꽃이 만개한 4월이었는데, 한강 공원을 걸으면서 갑자기 무릎을 꿇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나랑 평생 함께 걸어줄래?"

반지도 없었어요. 그냥 그 진심 어린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만으로... 저는 눈물이 핑 돌면서 고개를 끄덕였죠.

그 뒤로 결혼 준비하면서 더 알게 됐어요. 이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인지를요. 혼수 준비할 때도, 신혼집 구할 때도, 모든 걸 함께 의논했어요. 제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항상 "당신이 좋다면 나도 좋다"고 말해주던 사람...

 

1984년 5월에 결혼했어요. 신혼집은 작은 투룸 아파트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주고, 저녁에는 퇴근하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했죠. 그 사람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오면 항상 웃는 얼굴로...

"여보, 오늘 뭐 했어? 재미있는 일 있었어?"

저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어요. 자기 이야기는 나중이고요.

 

주말이면 손을 잡고 시장을 보러 다녔어요. 그 사람이 제가 좋아하는 딸기를 보면 꼭 사주곤 했죠. "우리 여보 좋아하는 거"라면서요.

가끔 작은 일로 다투기도 했어요. 신혼인데 어찌 안 그러겠어요? 하지만 절대 화가 나도 잠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지켰죠. 40년 동안...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의 기쁨... 아, 그때 그 사람 얼굴을 못 잊어요. 병원에서 초음파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정말 바쁘게 살았죠. 첫째, 둘째가 3살 터울이었는데,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 아빠였는지 몰라요.

밤에 아이가 울면 저보다 먼저 일어나서 기저귀 갈아주고, 분유도 타주고... 회사에서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아이들 책 읽어주는 건 빠뜨리지 않았어요.

 

첫째가 다섯 살 때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그 사람이 한 달 동안 매일 퇴근하고 나서 아이 손을 잡고 연습을 시켜줬어요. 무릎이 다 까져도... 아이가 넘어질까 봐 계속 뛰어다니면서요.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행복했어요.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며... 그 사람이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죠.

그래도 가족 여행은 꼭 갔어요. 1년에 한 번씩. 멀리 가지는 못해도 가까운 바닷가나 산에라도...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게 그 사람 말이었어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도 나이가 들어가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40대, 50대... 참 바쁘게 살았죠. 그 사람은 승진도 하고 책임도 무거워지고, 저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집안일에...

가끔은 대화할 시간도 부족했어요. 서로 피곤해서 말수도 줄어들고...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결혼생활에서 말이에요.

 

한번은 정말 크게 싸운 적이 있어요. 뭘로 싸웠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일주일 동안 서로 말도 안 하고 지냈죠.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와서 말하더라고요.

"여보, 우리 이러고 살 수는 없잖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사실 저도 잘못한 게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항상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었어요. 자존심보다 가족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지으며

50대가 되면서는 오히려 더 가까워졌어요.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니까 둘만의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진짜 친구 같은 부부가 된 것 같아요.

저녁에 같이 드라마 보면서 이야기하고, 주말에는 등산도 다니고... 그 사람이 "이제야 신혼 같다"고 농담하기도 했어요.

여행도 많이 다녔죠. 젊을 때 못 간 곳들... 제주도, 부산, 경주... 손 잡고 다니는 저희를 보고 사람들이 신혼부부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60대가 되면서... 건강 검진에서 처음으로 이상이 나왔어요. 그 사람 몸에서 작은 혹이 발견됐죠.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했어요. "걱정하지 마, 금방 나을 거야"라면서... 그런데 저는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투병 기간 3년... 정말 길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사람은 제 걱정만 했어요. "내가 먼저 가면 혼자 어떻게 살 거냐"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 같이 백세까지 살 거야"라고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고마웠다. 행복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40년을 함께한 제 인생의 반쪽이 떠났어요.

 

처음 몇 달은...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어요. 모든 게 그 사람과 함께였으니까요. 밥을 해도, TV를 봐도, 잠을 자도... 모든 순간이 그 사람과 함께였는데 혼자라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그 사람이 제게 남겨준 모든 추억들, 그 사랑들이 저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요.

 

지금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여보라면 뭐라고 할까?"를 생각해요. 그러면 답이 나와요. 40년을 함께 살았으니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너무 잘 아니까요.

아이들이 걱정해서 같이 살자고 하지만... 저는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요. 우리의 추억이 깃든 이 집에서. 그 사람의 흔적들과 함께요.

 

사랑하는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을 당연하게 여기지 마세요. 매일매일이 선물 같은 시간이에요. 작은 다툼보다는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그리고... 함께 있을 때 많은 추억을 만드세요. 그 추억들이 나중에...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여보... 어디서 듣고 있겠지요? 고마웠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볼게요. 약속했잖아요. 끝까지 행복하게 살겠다고...

사랑해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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