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택한 도피처는 왕실의 징벌과 궁궐의 그림자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듯한 깊고 고요한 산골이었다. 서천수와 박 씨는 세상의 시계가 멈춘 듯한 조용한 마을에서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그들의 삶은 가난하여 아침마다 땔감을 구하고, 흙을 일구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고단함의 연속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어깨 위에는 죽음의 족쇄가 잠시나마 느슨해져 있었다. 그들의 하루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얻는 고요한 기도와 같았다. 서천수의 거칠어진 손은 더 이상 검을 잡지 않았고, 박 씨의 섬세한 손은 수라간이 아닌 투박한 부엌에서 장작불을 다루었다. 궁궐에서 도망쳐 나온 두 운명의 동지는 서로의 깊은 상처를 보듬으며 조용히 살았고, 이 은둔의 세월 끝에 마침내 그들의 삶에 찾아온 가장 소중한 빛, 딸 장금이 태어났다.
"장금아... 너는 이 어미와 아비의 죄를 씻어줄 유일한 보물이다. 너의 이름처럼, 길고 귀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너의 작은 숨결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살아갈 이유였고, 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하는 해독제였다." 그녀는 아기의 순진한 눈을 바라보며, 과거 궁궐에서 겪었던 핏빛 광경과 독약 냄새를 씻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언제나 도사의 섬뜩한 예언이라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었다.
"궁에 들어가 칼을 받아 죽거나, 왕을 돕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운명." 그는 장금의 이름, '길고 귀한 금'이라는 뜻의 이름과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운명을 매일 되뇌었다. 그는 그 두 가지 길 모두를 거부하며, 딸을 궁궐과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된, 평범하고 안전한 삶 속에 가두려 했다. 그가 가진 것은 오직 폐비 윤 씨의 원한이 담긴 핏빛 헝겻 조각과, 딸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로서의 절박한 의지뿐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핏빛 헝겊 조각이 든 작은 주머니를 만지며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 아이에게 궁궐의 그림자는 닿지 못하리.'
서천수는 밤마다 잠 못 이루었다. 그의 침묵은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속죄의 묵언수행이었다. 그는 자신의 칼이 벤 여인의 피와, 그 피가 묻은 헝겊 조각을 통해 자신이 짊어진 굴레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낮에는 무딘 칼로 짐승의 고기를 다루는 백정의 일을 하며 속세에 섞여 살았지만, 밤에는 홀로 산봉우리에 올라 차가운 달빛 아래 검은 두려움과 싸웠다. 그는 장금이가 혹여나 밤중에 깨어나 자신의 핏기 없는 얼굴과, 찢어진 소매 사이로 보이는 옛 군관 시절의 칼자국을 볼까 두려워했다. 그의 고독은 곧 박 씨에게 전염되어 부부는 늘 팽팽한 긴장 속에 살았다. 박 씨는 남편에게 "도사님 예언은 그저 허황된 소리일 뿐입니다. 우리 딸은 평생 백정의 딸로 살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그녀 자신을 설득하려는 처절한 시도일 뿐이었다.
장금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옹알이를 넘어 명료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서천수와 박 씨의 불안은 마치 마른 장작에 붙은 불처럼 더욱 크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금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평범한 백정의 딸로 살아가기를 바랐던 부모의 소망과는 달리, 그녀는 세상의 이치와 글에 대한 멈출 수 없는, 탐욕스러운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 총명하여, 부모가 굳게 닫아놓은 비밀의 문을 끊임없이 엿보는 듯했다.
어느 날, 장금은 마을 아이들이 서당에서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진흙이 묻은 작은 손으로 어머니의 치마폭을 붙잡았다.
"어머니, 저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왜 돌멩이에 글씨를 새기는 것입니까? 저는 왜 서당에 갈 수 없습니까?"
박 씨는 그 질문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딸의 비범한 재능이 자신들의 운명을 다시 궁궐로 이끌어갈까 두려웠다.
장금의 호기심은 단순히 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는 부엌에서도 비범했다. 박 씨가 끓이는 곰국이나, 나물을 무치는 손길을 어린 눈으로 주의 깊게 관찰했다. 어느 날, 박 씨가 된장국을 끓일 때였다.
"어머니, 오늘은 왜 어제와 된장국 맛이 다릅니까? 오늘은 소금이 더 많이 들어갔습니까?" 박 씨는 깜짝 놀라 국물에 손가락을 찍어 맛보았다. 정말 소금의 양이 조금 더 많았다. "장금아,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넌 맛을 보지도 않았잖느냐." 장금: "아닙니다, 어머니. 오늘은 끓는 거품의 크기가 어제보다 작습니다. 그리고 냄새가 혀가 느끼는 것처럼 짜고 날카롭습니다."
그녀의 감각은 이미 수라간 최고 궁녀였던 어머니의 유전을 물려받아 비범했다. 음식을 눈으로, 냄새로, 끓는 모양새로 분석하는 이 타고난 재능은 박 씨에게는 더욱 큰 불안을 안겨주었다. 백정의 딸이 가질 수 없는, 오직 궁궐의 미각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이었다. 이 아이는 평범하게 살 운명이 아니었다. 이 재능은 곧 그녀를 궁궐로 이끄는 치명적인 자석과도 같았다.
"너는 백정의 딸이다. 방가(班家)의 도령들과 어울려 글 공부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느냐. 백정이 글을 배우는 것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죄이니라. 너의 아비와 어미는 네가 그저 평범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이 소원이다. 세상의 이치를 알 필요도, 세상의 글을 읽을 필요도 없다. 너는 그저 짐승을 다루고, 고기를 썰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박 씨는 매일매일 장금이의 비범한 재능을 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장금이는 이미 영리했다. 그녀는 부모의 불안을 감지했고, 그들의 엄격한 금지가 오히려 더 큰 호기심을 유발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신분 사회는 양반은 양반이, 백정은 백정이 할 일이 따로 정해진 엄격한 굴레였다. 장금이의 타고난 영특함은 부모에게는 축복이 아닌 저주와 같은 불안함이었다.
"어머니... 저희는 정말 백정입니까? 왜 아버지는 다른 백정들처럼 말을 거칠게 하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다른 백정 어머니들처럼 고기를 썰지 않으십니까? 왜 아버지는 밤마다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시는 것입니까?" 그녀의 질문은 너무나도 정확하여 박 씨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린 장금이가 "우리는 백정이 아닙니까?"라고 되묻는 순간, 박 씨는 운명이 자신들을 놓아주지 않았음을, 궁궐의 그림자가 장금이의 영혼에까지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박 씨는 더 이상 딸의 타고난 재능을 막을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딸을 꺾는 대신, 그 재능을 생존을 위한 무기로 바꾸기로 결단했다. 그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충안을 찾아냈다.
"장금아, 잘 들어라. 너는 이제부터 절대 서당에 가지 말고, 마을에도 내려가지 말라는 엄한 약속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 너와 어미, 아비 외에는 아무도 네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이 약속을 어긴다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
박 씨는 이 맹세의 무게를 장금이의 작은 어깨에 짊어지게 한 후,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장금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때 수라간 궁녀로서 익혔던 글과 셈, 그리고 은밀한 궁중의 언어까지 딸에게 전수하며, 다가올 운명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낡은 책갈피에 숨겨두었던 몇 장의 종이에 글자를 써서 딸에게 가르쳤고, 그 글자들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궁궐의 암투와 생존의 지혜가 담긴 비밀 코드였다. 박 씨의 눈빛은 어머니로서의 희생과 궁궐에 대한 원한, 그리고 딸을 반드시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강렬한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장금의 비범함이 자신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억울함을 밝힐 유일한 도구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고요한 산골 초가집의 밤은, 모녀가 운명에 맞서 비밀스러운 맹세와 지식을 나누는 전쟁 준비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날의 저녁놀은 유난히 붉고, 박 씨의 가슴에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서천수는 생계를 위해 읍내 장터를 돌아다녔고, 그날도 어김없이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왔어야 했다. 그는 늘 약속된 시간이 되면 멀리서부터 특유의 듬직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돌아왔고, 박 씨는 그 소리만으로도 평화를 느꼈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의 듬직한 그림자는 집 앞에 드리워지지 않았다. 산골의 밤은 칠흑 같았고, 바람 소리마저 숨 막히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박 씨는 불안한 예감에 떨며 밤새워 남편을 기다렸다. 그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낡은 창호지 문밖을 수백 번도 넘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깨지기 직전의 사기그릇처럼 불안하게 뛰었다.
밤 열두 시, **자시(子時)**가 되자 산짐승들이 울기 시작했다. 보통은 길조였으나, 그날 밤의 울음소리는 마치 운명을 예고하는 불길한 경고처럼 들렸다. 박 씨는 서천수의 몫으로 남겨둔 식은 밥그릇을 바라보았다. 그 밥그릇의 흰 쌀알 위로 그녀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설마, 설마... 아닐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았다. 서천수는 워낙 무술이 뛰어났기에, 단순한 강도나 산짐승에게 당했을 리 없었다.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직 궁궐의 끈질긴 추적 때문일 수밖에 없었다.
"산길이 미끄러운 것일까? 아니면 장터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한 것일까? 아니야, 천수 님은 절대 약속을 어길 분이 아니신데...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마치 궁궐의 독기가 이 산골까지 스며든 것만 같다. 그들이, 기어이 우리의 흔적을 찾아낸 것일까?" 그녀는 몇 년간 억눌러왔던 공포가 다시 목을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장금이가 잠든 방으로 가서 딸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딸의 체온만이 그녀를 현실에 붙잡아 두는 유일한 끈이었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박 씨는 더 이상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장금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마을 아래로 급히 내려갔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갖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마주친 마을 노파의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노파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제... 밤중에 난리가 났소! 서천수 씨가 끌려가셨다오! 정체불명의 관원들이 들이닥쳐서, 다짜고짜 **'대역죄인의 잔당'**이라며 포박해 갔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검은 옷을 입었고,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소! 서천수 씨가 억울하다고 절규하셨으나 소용없었소... 글쎄, 그들은 그를 꽁꽁 묶어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었다고 하더이다! 이미 우리보다 한나절을 빨리 가셨다오!"
서천수는 결국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의 집행자로서의 신분이 탄로 나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대역죄인의 잔당'**이라는 잔혹하고 명확한 죄목은, 서천수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박 씨는 즉시 깨달았다. 그들의 징벌은 곧 박 씨 자신과, 심지어는 장금이에게까지 미칠 것이었다. 박 씨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눈앞이 캄캄해졌고, 땅바닥에 무너져 앉았다. 그들은 수년간 세상으로부터 숨어 살았지만, 왕실의 징벌과 폐비의 저주는 결코 그들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몸을 묶었던 굴레가 다시 핏빛으로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박 씨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땅바닥에 떨어진 짚신을 움켜쥐고, **'이대로 주저앉으면 장금이도 죽는다'**는 어머니의 본능으로 일어섰다. 그녀에게는 슬퍼할 시간도, 탄식할 여유도 없었다. 박 씨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장금이를 품에 안고, 이 상황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직 명령만이 중요했다.
"우리보다 한나절을 빨리 가셨으니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 해! 장금아, 너는 끌려가신 아버지 모습을 다시는 봐서는 안 된다! 우리를 쫓는 추쇄꾼이 이 산골까지 따라왔을지 모르니, 너는 당분간 사내아이 행세를 하거라! 네 긴 머리를 끈으로 단단히 묶고, 이 옷을 입어야 한다. 네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한양은 특히 위험한 곳이니, 애미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녀는 장금의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는 대신, 단호하게 가위를 가져왔다.
"장금아, 미안하다. 네 머리카락은 너무 예쁘지만... 지금은 이걸 잘라야 한다. 궐의 추격대 눈에는 여인의 그림자조차 띄어서는 안 된다." "네, 어머니..."
삭둑! 가위 소리가 그녀들의 운명을 끊어내듯 산골 초가에 울려 퍼졌다. 박 씨는 떨리는 손으로 장금에게 서천수의 낡은 사내아이 옷을 입히고, 그녀의 긴 머리를 짧게 잘라 묶었다. 그녀는 봇짐에 최소한의 식량과, 그리고 궁궐의 비밀이 담긴 서찰을 품 깊이 숨겼다. 그녀는 남편의 압송 행렬을 뒤쫓아 운명의 도시, 한양으로 향했다. 그녀의 등에 업힌 장금은 아직 이 모든 비극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그저 엄마의 옷자락을 꼭 잡은 채 흐느낄 뿐이었다. 그녀가 등에 업은 것은 딸의 무게가 아니라, 궁궐의 비밀과 복수의 무게였다. 박 씨의 발걸음은 절박했고, 그녀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걸고 운명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전사 같았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장금을 살려 궁궐의 최고 상궁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그들의 억울함을 풀고, 도사의 예언을 성취하는 유일한 길임을 그녀는 직감했다.
그들의 여정은 고난 그 자체였다. 박 씨는 낮에는 짐꾼들 틈에 섞여 행상인 행세를 했고, 밤에는 차가운 역참 마루나 숲 속의 나무 밑에서 잠을 청했다. 장금이는 남장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며칠 동안 씻지 못한 몸에서는 땀 냄새와 먼지 냄새가 났다. 하지만 박 씨는 딸에게 궁궐의 예절만은 잊지 않도록 가르쳤다. "장금아, 너는 비록 사내아이 행세를 하지만, 밥을 먹을 때는 항상 허리를 펴고, 음식의 정갈함을 감사히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궐의 법도이니라." 박 씨는 궁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이제는 딸에게 궁궐의 흔적을 주입하여 생존의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했다. 이 고통스러운 여정은 장금에게 궁궐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첫 번째 교훈을 심어주었다.
평화는 늘 가장 예고 없이 무너지는 법이다. 깊은 산골, 나뭇가지 사이로 별빛마저 숨어버린 그날 저녁, 서천수(장금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읍내 장터를 돌아다녔고, 해가 넘어간 후 늦은 저녁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고요만이 집을 감쌌고, 평소의 듬직한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박 씨(장금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남편은 굳건하고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으나, 산길이 험하고 가을비가 내린 뒤에는 땅이 질어 발이 묶이는 일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이토록 늦을 분이 아니신데. 해가 진 지 한참인데, 이 캄캄한 밤까지. 읍내와 우리 집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말이야. 짐승이라도 만난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혹시라도 그 그림자가. 그 핏빛 운명이, 이 산골까지 따라와 우리를 찾은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독백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수백 번 되뇌었다. 박 씨는 부엌 아궁이의 불씨를 되살려 일부러 마당을 환하게 비추었다. 마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불길한 존재에게 '우리는 아직 무사하다'는 듯한 허세 섞인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아니다. 아니다. 그저 길이 미끄러워 늦어지시는 것일 뿐이다." 그녀는 애써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려 했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 장금이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그녀의 순진한 숨소리만이 이 절망적인 침묵 속에서 유일한 위안이었다. 박 씨는 조용히 장금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기운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귀는 문밖의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심지어는 멀리서 여우가 우는 소리까지도 궁궐에서 자신을 쫓던 추격대의 말발굽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년간 억눌러왔던 궁궐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워지는 것을 감지했다. 서천수가 늘 그녀에게 했던 경고, '우리가 궁궐에서 멀리 벗어났다 하여도, 그림자는 늘 우리의 뒤를 쫓고 있다'는 그 말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의 도피 생활은 단순한 숨바꼭질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왕실의 권력과,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이라는 끔찍한 비극이 남긴 원한이 만들어낸 족쇄였다. 박 씨는 창호지 문을 가만히 응시했다. 창호지 너머의 어둠이 마치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수백 개의 눈동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서둘러 장작을 더 가져와 마당에 쌓아둔 장작이 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불꽃을 키웠다. 불꽃은 희망이자, 동시에 적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위험한 미끼였다. 박 씨는 밤새워 남편을 기다렸다. 그녀의 손은 이미 굳게 쥔 채 풀리지 않았고, 심장은 북처럼 불안하게 뛰었다. 새벽닭이 울기 시작하고, 동이 트기 시작할 때까지도 서천수의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양이 떠오르자,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이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라 '체념'으로 이어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골 마을에 궁궐의 검은 덫이 놓였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결단해야 했다. 남편을 찾으러 나설 것인가, 아니면 이 집을 버리고 다시 도망칠 것인가. 모든 선택지 위에는 장금이의 생명이라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다. 박 씨는 결국,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떼기로 한다. 이 결단이 그녀의 운명을 더욱 잔혹한 시험대에 올릴 것임을 예견하지 못한 채. 그녀가 몇 년간 애써 외면했던 '궁녀 박 씨'의 신분이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박 씨는 더 이상 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장금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마을 아래로 급히 내려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걷는다기보다는 비행하는 것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남편이 장터에서 술을 과하게 마시고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짐꾼들에게 시비를 걸어 다툼에 휘말린 것은 아닌지 하는 온갖 가능성을 생각하며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노파가 있을 만한 우물가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마을 노파는 박 씨를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노파의 떨리는 손짓과 공포에 찬 눈빛은 박 씨의 가장 깊은 불안을 즉시 현실로 만들었다.
"어제... 밤중에 난리가 났소! 서천수 씨가 끌려가셨다오! 세상에, 나는 평생 그런 난리는 본 적이 없소! 밤중에 들이닥친 그 관원들의 모습이라니, 얼마나 섬뜩했는지... 그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복장을 하고 있었소. 온몸을 검은 포로 감싸고,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지. 그들이 서천수 씨를 덮쳤을 때,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소." 노파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정체불명의 관원들이 들이닥쳐서, 다짜고짜 **'대역죄인의 잔당'**이라며 포박해 갔습니다. 서천수 씨가 억울하다고 절규하셨으나 소용없었소... 그는 백성들을 위해 이 마을에서 묵묵히 짐을 져 날랐던 평범한 사내였는데, 어찌하여 대역죄인이란 말이오! 관원들은 그의 죄가 '오래전 왕실을 더럽힌 대역죄'와 연루되어 있다고 외쳤소! 글쎄, 그들은 그를 꽁꽁 묶어 말을 태워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었다고 하더이다! 이미 우리보다 한나절을 빨리 가셨다오! 박 씨, 당신도 조심해야 하오! 그들이 당신과 아이까지 찾을까 봐 모두들 두려워하고 있소..." 노파의 공포에 찬 목소리는 박 씨의 귓속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그 소식은 박 씨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머릿속은 수많은 장면들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폐비 윤 씨의 억울한 죽음, 그 피로 물든 헝겊 조각, 그리고 서천수가 그 집행자였다는 참혹한 과거. 그들은 수년 동안 그 핏빛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결국 왕실의 징벌은 그들을 잊지 않고 가장 평화로운 순간에 들이닥친 것이다.
"왕실의 징벌이! 기어이 우리를 잊지 않았구나! 그 저주가, 그 핏빛 헝겻 조각의 원한이... 이토록 집요하게 우리를 쫓는단 말인가!" 그녀의 절규는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으나, 소리는 땅속으로 파묻히는 듯 미약했다. "아, 천수 님... 당신마저... 폐비 윤 씨의 원혼이 기어이 당신의 목숨을 앗아가는구나. 폐비의 사사 사건은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인데, 이토록 집요하게 죄인을 찾아내는 왕실의 집념이라니! 게다가 '대역죄인의 잔당'이라는 말은 서천수 님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장금이까지도 포함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녀는 온몸의 피가 식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서천수는 결국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의 집행자로서의 신분이 탄로 나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수년간의 도피와 은둔은 왕실의 징벌과 폐비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체포가 아니라, 박 씨의 목숨까지 노리는 궁궐 내부의 검은 음모와 연결되어 있었다. 박 씨는 남편의 체포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최 상궁 일파의 사주와 무관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들의 권력은 산골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을 궁궐 밖으로 내쫓았던 최 상궁 일가의 생존을 위한 잔혹한 숙청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녀의 절망은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충격과 공포를 억누른 채,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힘겹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금이가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금이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과 흙먼지가 묻은 옷차림을 보고 겁에 질려 있었다. 박 씨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장금이를 꼭 껴안았다. 장금이의 따뜻한 체온만이 그녀의 정신을 현실로 붙잡아 두었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남편은 이미 한양 의금부로 끌려갔고, 궁궐의 추격대는 자신들을 향해 좁혀오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딸만은 살려야 한다는 어머니의 본능으로 필사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 "장금아... 이제부터 너는 **'덕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아이 행세를 해야 한다. 네 긴 머리는 상투를 틀 듯 짧게 묶고, 목소리도 조금은 굵게 내야 한다. 네 아비의 억울한 죄를 물으려는 추쇄꾼들이 반드시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너희 아비의 죄는 '대역죄'니, 그들의 눈에는 네가 여자아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모두 살아남지 못한다! 한양은 특히 위험한 곳이니, 애미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박 씨는 장금에게 사내아이 옷을 입히고, 평소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짐승 뼈 조각과 돌멩이를 봇짐에 넣어 아이의 시선을 돌리게 했다.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새도 없이 마치 전쟁터로 나서는 군인처럼 냉정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생존'과 '복수'라는 두 가지 단어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서둘러 봇짐에 약간의 식량과 옷가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챙겼다.
박 씨는 품속 깊은 곳에서 꺼낸 작은 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궁궐 수라간에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최 상궁 일가가 임상대감과 결탁하여 행했던 수라간 물품 빼돌리기 및 부정부패의 치명적인 비밀이 상세히 기록된 **'운명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증거였지만, 동시에 훗날 장금이가 궁궐에 들어가 복수의 칼날을 갈게 할 유일한 무기이기도 했다. 그녀는 서찰을 품에 단단히 숨기고, 어린 장금이를 등에 업고 남편의 압송 행렬을 뒤쫓아 운명의 도시, 한양으로 향했다.
박 씨는 필사적으로 걸었다. 그녀의 발밑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을지라도, 그녀의 정신은 오직 딸을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모성애로 가득 차 있었다. 남편 서천수를 붙잡은 이들이 바로 과거 자신을 모함하고 궁궐 밖으로 내쫓았던 최 상궁 일파와 연결되어 있음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녀는 왕실의 징벌과 함께, 인간의 탐욕과 복수심이라는 더러운 덫이 자신들을 조여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최 씨 일가! 네 년들이 기어코 이 천수 님과 장금이까지 해하려 하는구나! 나는 너희들의 그 잔혹한 야망을 내 딸의 손으로 반드시 무너뜨릴 것이다!" 박 씨는 속으로 맹세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더 이상 평범한 백정 아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심에 불타는, 왕실의 비밀을 간직한 전직 궁녀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녀의 봇짐 속에는 오직 약간의 식량과, 그리고 장금의 운명을 결정지을 '운명의 서찰'만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궁궐 수라간은 겉으로는 정갈하고 고요했지만, 그 안은 최고 상궁의 자리를 둘러싼 최 상궁 일가의 검은 야심과 끊임없는 암투로 들끓고 있었다. 최 상궁은 단순히 수라간 최고 책임자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외부의 거대한 권력인 임상대감과 은밀하게 결탁하고 있었다. 그들의 결탁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라간을 통해 들어오는 귀한 물품들을 조직적으로 빼돌리고, 그 이익을 나누어 궁궐 내부의 자신들의 세력을 키우는 거대한 부정부패의 사슬이었다. 이 사슬은 왕실의 재정을 좀먹고, 정직한 다른 궁녀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서천수의 체포 소식은 들었겠지. 이 모든 것은 임상대감과 내가 주도하여 벌인 일이다. 서천수는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의 집행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제거할 명분이 되었지.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대역죄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 아내, 도망친 궁녀 박 나인이다." 그녀는 처소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응시했다. "그녀는 과거 내가 수라간에서 겪었던 모든 일, 그리고 폐비 윤 씨 사사 사건의 전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산 증인이다. 그리고 더욱 치명적인 것은, 그녀가 우리가 임상대감과 결탁하여 수라간의 귀한 물품들을 빼돌린 비밀 장부의 존재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 상궁의 눈빛은 잠시 흔들렸으나, 이내 다시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 비밀이, 만약 궁궐의 윗선이나, 특히 감찰 상궁에게 흘러들어간다면... 우리 최 일가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수라간의 권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숙모님! 박 나인이 만에 하나라도 살아남아 궁궐에 돌아오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이 치명적인 비밀을 발설한다면, 저희 최 일가의 운명은 물론이고, 윗분들, 즉 임상대감 일파의 심기까지 건드려 저희가 그들의 숙청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합니다. 지금쯤 남편을 찾아 한양 근교를 헤매고 있을 텐데, 추격대를 더 풀어 그녀를 즉시 찾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권력 상실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최 상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궁궐의 공식 추격대를 너무 깊이 관여시키면, 그들의 수사망이 오히려 우리에게까지 뻗어올 수 있다. 우리는 공식적인 '대역죄인 추적'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사적으로 그녀를 처리해야 한다. **박 씨의 죽음은 '도주 중 사고사'**로 위장되어야만 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살기가 가득했다. 그녀는 박 씨의 존재가 최 일가의 권력과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녀를 제거하기 위한 잔혹하고 치밀한 계략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옛 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권력의 정점에서 살아남기 위한 냉혹한 계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최 상궁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박 씨는 남편을 찾기 위해 한양 근교를 배회할 것이고, 쫓기는 자의 심정상 외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녀는 궁궐 내부의 정직한 인물을 가장 신뢰할 것이며, 그중에서도 과거 친분이 깊었던 한 상궁이야말로 박 씨에게 가장 달콤하고 위험한 미끼가 될 것이라 계산했다. 한 상궁은 수라간에서 가장 정직하고 인간적인 인물이었기에, 박 씨와의 오랜 인연을 끊지 못하고 그녀를 도우려 할 것이 분명했다. 최 상궁은 그 순수한 정을 이용하여 박 씨를 절망의 덫으로 유인하기로 했다.
"박 나인을 제거하는 것은 이제 집안을 보존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주도하여 일을 처리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한양 근교, 특히 물길이 닿는 서강 나루터 근방을 헤매고 있을 터. 이 기회에 그녀를 흔적도 없이 처리해야 할 것이오. 우리는 궁궐 추격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의 사병들을 동원하여 그녀를 조용히 처리할 것이다." 그녀는 옆에 있는 자신의 사적인 궁녀를 불렀다. "한 상궁을 서강 나루터로 보내시오. **내수부에서 특별히 요청한 '해물 진지'**를 수송하라는 핑계를 대면 됩니다. 한 상궁은 수라간 최고 실력자이므로, 이런 중요한 임무는 그녀에게 맡겨야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숙모님! 한 상궁에게 그토록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면, 박 나인이 그녀를 찾아 나설 때, 한 상궁마저 위험해지는 것은 아닙니까?"
최 상궁 (비웃듯이): "한 상궁이 위험해진다고? 그것이 바로 나의 계략이다! 박 나인은 필시 한 상궁의 존재를 알게 되면 옛정을 끊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나설 것이다. 박 나인이 한 상궁에게 접근하면, 우리의 추격대는 한 상궁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가 박 씨를 덮칠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순간, 박 씨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려 할 것이고, 그때를 노려 우리는 그녀를 조용히 처리할 것이다. 그녀가 죽으면, 모든 비밀은 땅에 묻히고, 우리는 안전해진다!" 최 상궁은 자신의 야망과 권력을 위해 인간적인 도리를 짓밟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한 상궁이 이 모든 음모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수라간의 중요한 일로만 알고 서강 나루터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 상궁에게는 더욱 잔혹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녀는 한 상궁을 미끼로 사용함으로써, 박 씨의 제거는 물론, 혹시 모를 한 상궁의 배신 가능성까지도 사전에 차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그녀의 계획은 완벽하게 잔혹하고 치밀했다. 궁궐 밖으로 도망친 박 씨는 이제 궁궐 안의 가장 믿었던 사람의 정에 이끌려 스스로 지옥의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박 씨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걸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극한의 고통을 호소했지만, 등 뒤의 어린 장금이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가 그녀의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금이가 사내아이 복장을 하고 등에 업혀 있는 동안에도, 혹시라도 울음을 터뜨리거나 여자아이의 몸짓을 보일까 봐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숲 속을 헤쳐 나갔다. 그녀는 곧 자신들이 궁궐의 공식 추격대와 최 상궁 일파가 고용한 사적인 추격대라는 이중의 덫에 갇혔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짐승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흙냄새와 풀냄새 속에서, 그녀는 희미하지만 섬뜩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궁궐 무사들의 땀 냄새와 검에 묻은 기름 냄새였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이 속도로는 한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남편은 이미 끌려가 희망이 없는데, 나까지 붙잡히면 장금이는 홀로 남겨진다. 아니다. 홀로 남겨지게 해서는 안 돼. 최 상궁 일가는 나를 잡기 위해 가장 교활하고 집요한 방법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체포가 아니라, 완전한 소멸이다. 나를 통해 모든 비밀이 영원히 묻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쫓는 그림자가 점점 좁혀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섬뜩한 고함 소리가 그녀의 절망적인 직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말발굽 소리는 이제 숲 속을 진동시키며 그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 앞의 산길을 막아라! 대역 죄인의 식솔들이 저리로 도주했다! 절대 살려두지 말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와라!"
박 씨는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을 멈추었다. 그녀는 숨이 턱 막혔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아졌다. 그녀는 이제 도망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딸에게 마지막 도망칠 기회를 주기 위해, 필사적인 희생을 결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장금이를 품에 안고, 숲 속의 큰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터질 듯이 고동쳤고, 그녀는 이제 어머니로서의 마지막 고백이자 유언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 고백은 장금이의 남은 삶 전체를 관통할 운명의 씨앗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이 비극적인 순간마저도 딸의 미래를 위한 계산으로 채워 넣었다.
박 씨는 추격대가 코앞까지 다가오기 전에, 떨리는 손으로 장금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장금이는 어머니의 불안한 눈빛과 사납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듣고 울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박 씨는 단호한 눈빛으로 딸의 입을 막았다.
"장금아... 잘 들어야 한다. 너의 아버지는 한때 왕을 지키던 늠름한 군관이셨고, 나는 저 궐의 수라간에서 임금님의 수라를 짓던 궁녀였단다. 우리는 억울한 이유로 도망쳐 숨어 살았지만, 우리를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행복하게 해 준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 너는 이 어미의 생명이며, 이 어미의 모든 것이다." 박 씨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으나, 그녀는 그 눈물이 장금이에게 닿지 않도록 재빨리 닦아냈다.
"도사님께서 말씀하셨단다. 네 운명은 비극과 영광 사이에 걸려 있다고. '너는 칼을 맞아 죽거나, 왕을 살리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하는 두 가지 무서운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셨지. 네가 만일 살아남는다면, 넌 반드시 왕실을 해치는 악을 물리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것이다. 넌 그럴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단다." 그녀는 장금이가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무게를 그녀의 작은 어깨에 짊어지게 했다. "이것이 이 어미의 마지막 유언이다. 너는 살아야 한다. 너는 살아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왕실의 징벌을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다."
그녀는 장금이에게 남자의 옷을 입히고, 남편이 없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박 씨는 궁궐에 대한 그녀의 증오와, 그녀를 쫓는 최 상궁 일가에 대한 복수심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를 쫓는 저들은 너희 아버지를 잡아간 자들과 한통속이다. 그들은 너희 아버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나를 죽여 궁궐의 모든 악행을 영원히 묻으려 한다. 너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네 힘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을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 그녀는 장금이의 머릿속에 이 잔혹한 진실을 가장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시키려 했다. 그 트라우마는 훗날 장금이가 궁궐에서 온갖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강철 같은 의지가 될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박 씨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는 품속 깊이, 마치 자신의 심장처럼 소중하게 숨겨두었던 서찰을 떨리는 손으로 장금에게 건넸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박 씨가 궁궐 수라간 궁녀 시절, 최 상궁 일가의 비리와 음모를 목격하고 몰래 기록해 둔 비밀 장부의 조각이었다. 최고 상궁의 음식 기록에 대한 내용부터, 임상대감과의 불법 거래 기록까지, 최 일가의 권력과 생존에 치명적인 증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것은 네가 궐에 들어가 수라간 최고 상궁이 되었을 때, 네 아비와 이 어미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이 서찰은 네가 궁궐에서 살아남아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운명의 지도다. 너의 천장(天藏) 책갈피에 숨겨놓았던 것이다. 너의 운명의 선택지다. 궐에 들어가길 싫거나 최고 상궁이 되지 않는다면, 이 서찰은 뜯어보지도 말고 불태워 버리거라. 이 서찰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너의 목숨도 끝날 것이다." 그녀는 서찰의 위험성을 강조함으로써 장금에게 최고 상궁이라는 목표를 강제로 심어 넣었다.
박 씨는 장금에게 맹세를 요구했다. 그녀는 장금이의 작은 손을 잡고, 자신의 피가 묻은 손으로 딸의 손을 덮었다.
"하지만, 만약 네가 최고 상궁이 된다면! 너는 반드시 이 어미의 억울한 사연을 이 서찰에 적힌 방식대로 세상에 밝혀야 한다! 이 책을 네 천장 책갈피에 다시 숨겨놓아야 한다. 이 서찰은 네게 내려진 운명의 숙명이다. 장금아, 이것이 널 살릴 유일한 희망이다! 너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고, 왕실의 음식을 통해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맹세해라!"
어린 장금이는 어머니의 간절한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에 압도되어 무서움 속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찰은 박 씨가 최 상궁 일가의 비리와 음모를 기록해 둔 가장 위험한 증거이자, 장금의 궁궐 입궐을 위한 운명의 씨앗이었다. 박 씨는 서찰을 장금의 사내아이 옷 안 깊숙한 곳에 숨겨주었다. 그녀는 이 서찰이 장금이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녀를 살아남게 할 유일한 무기임을 확신했다. 이제 그녀는 마지막 남은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되었다. 바로 딸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유언을 마치는 순간, 추격대의 말발굽 소리는 이제 나무 뒤에 숨은 박 씨와 장금이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박 씨는 시간이 없음을 알았다. 그녀는 장금이를 자신의 등 뒤에 숨기며, 마지막 힘을 다해 딸을 숲 속 깊은 곳, 가장 은밀하고 어두운 곳으로 밀어냈다.
"도망쳐! 장금아, 살아야 한다! 너는 살아서 이 어미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네가 이 어미의 마지막 희망이다!" 박 씨는 이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몸으로 추격대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녀는 딸에게 단 1분의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그녀는 돌덩이와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추격대에게 달려들었다.
"내 딸에게서 떨어져라! 이 더러운 짐승들아! 너희들의 악행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죄를 이 세상에 반드시 밝힐 것이다!"
추격대는 잔혹하고 무자비했다. 그들은 최 상궁 일파의 사주를 받아 이 비밀을 영원히 묻어야 한다는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박 씨의 생포가 아니라, 그녀의 완전한 제거였다. 추격대장으로 보이는 자는 박 씨의 필사적인 저항에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검을 꺼내 들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박 씨의 절규, 그리고 추격대원들의 거친 고함 소리가 숲 속을 뒤흔들었다. 박 씨는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궁궐 무사들의 훈련된 칼날을 맨몸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칼날은 냉혹하게 박 씨의 몸을 꿰뚫었다. 피가 솟구쳤고, 박 씨는 자신의 피로 물든 땅을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은 마지막까지 장금이가 숨어 있는 숲 속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살아남아라'라는 마지막 유언을 전하는 듯했다. 그녀의 몸이 차가운 땅에 쓰러지는 순간, 모든 소리는 다시 고요해졌다.
어린 장금이는 숲 속 깊은 곳, 촘촘한 덤불 뒤에 숨어, 어머니의 비명 소리와 차가운 칼날이 가죽을 꿰뚫는 끔찍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어린 장금이의 가장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다. 그녀는 숨조차 쉴 수 없었고,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숨 막히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눌렀다. 엄마의 옷자락을 놓지 못했던 손에는 어머니가 준 운명의 서찰만이 쥐어져 있었다. 서찰은 땀과 흙으로 얼룩졌지만, 그 존재감만은 더욱 선명했다.
장금이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추격대원들이 쓰러진 박 씨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들이 찾던 비밀스러운 '서찰'이 있는지 그녀의 몸을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서찰을 찾지 못하고 분노하며 자리를 떴다. 어머니의 몸이 차가운 땅에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가는 순간, 서천수가 짊어졌던 폐비 윤 씨의 핏빛 헝겉 조각이 장금이가 숨은 자리로 바람을 타고 떨어졌다. 마치 운명이 그 아이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핏빛 헝겊 조각은 장금이가 움켜쥔 서찰 위로 떨어져 영원한 낙인을 찍었다. 붉은 피와 검은 비밀이 담긴 서찰, 그리고 핏빛 헝겊 조각의 만남. 이것은 장금의 운명이 이제 단순히 어머니의 복수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왕실 비극의 굴레와도 연결되었음을 상징했다.
핏빛 굴레는 완성되었다. 서천수는 대역죄인이 되어 끌려갔고, 박 씨는 억울한 원혼이 되었다. 어린 장금은 남자의 옷을 입은 채, 홀로 남겨졌다. 그녀의 손에는 어머니의 피처럼 느껴지는 운명의 서찰만이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 도사의 예언, 그리고 핏빛 저주를 짊어진 채, 장금은 이제 궁궐로 향하는 새로운 운명의 길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궁궐 이야기는 바로 이 비극적인 이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덕구'라는 이름의 사내아이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권력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의 앞에는 칼을 받아 죽거나, 왕을 돕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운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장금의 선택은 이제 시작된다.
산골 마을의 평화는 깨졌고, 궁궐의 암투는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에게까지 핏빛으로 스며들었다. 홀로 남겨진 어린 장금은 이제 '백정의 딸'이라는 굴레를 짊어지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최고 권력의 심장부인 궁궐로 향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운명에 놓였다. 그녀가 짊어진 짐은 무거웠으나, 어머니의 유언과 타고난 재능은 그녀에게 살아남아 세상에 우뚝 설 힘을 줄 것이다. 궁궐에 들어가 칼을 받아 죽거나, 왕을 돕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운명. 장금의 선택은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