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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작가 소년이 온다.

by 작은집 큰행복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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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어린 새

1980년 5월, 그해 봄은 평범했던 중학교 3학년이었던 동호에게 너무나 잔인한 계절이었다. 동호는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되어 소년 티를 겨우 벗으려던 열다섯 살이었다. 광주 중흥동의 낡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정미 남매와는 아주 가까웠었다. 정대는 동호와 같은 학년이었고, 둘은 방과 후면 나란히 앉아 입시 준비를 했었다. 늦은 저녁까지 교과서를 펼쳐놓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뻔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공유했었다. 그날들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었다. 책상 위에는 늘 정미 누나가 깎아준 연필과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어느 날 갑자기 산산조각 났다. 처음 시신을 본 날은 잊을 수 없다. 광주역 앞에서 총에 맞은 시신들이 리어카에 실려, 시위대의 맨 앞에서 행진하는 것을 동호는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리어카 위에는 창백하게 식어가는 몸들이 놓여 있었고,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사람들이 모인 그 뜨거운 광장에서, 동호와 정대는 자신들도 모르게 손을 꽉 잡았다. 두 소년은 그 거대한 슬픔과 분노의 선두 열기 속으로, 마치 끌려가듯 나아갔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북소리와 구호 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그보다는 알 수 없는 비장함과 결의가 온몸에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굉음과 함께 터진 총소리는 광장을 일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꿈틀거리던 인파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졌고, 비명과 울음, 그리고 둔탁한 소리가 뒤섞였다. 동호는 그 혼란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정대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만, 사람들의 거친 파도에 밀려 정대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공포가 온몸의 세포를 지배했고, 필사적으로 몸을 피한 후였다. 간신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렸을 때, 멀리서 쓰러져 있었지만 미세하게 운동화 발이 움직이던 하늘색 체육복 바지를 동호는 보았다. 그 옷은 분명 정대의 것이었다. 동호는 본능적으로 다시 냅다 뛰쳐나가 정대를 부르려 했다. "정대야!" 하고 소리치려 입을 열었지만, 곁에 있던 덩치 큰 아저씨가 동호의 팔을 낚아채듯 잡고 눈을 가렸다. 아저씨는 속삭이듯, 혹은 경고하듯, 지금 나서는 건 개죽음이라고, 살아야 한다고 말렸었다. 동호는 그때의 그 강력한 손길과, 아저씨의 떨리는 목소리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아저씨의 손은 온몸의 근육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동호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서 멀리 있는 정대의 옷자락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늦게, 해가 저물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사랑채 정대의 방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지만, 방 안에는 낯선 공기만 감돌았다. 늘 정돈되어 있던 책상 위에는 그대로 책들이 놓여 있었지만, 인기척이 없으니 방 전체가 숨을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정미 누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동호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을 먹이려 했지만, 밥알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동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그때 정대의 손을 왜 놓쳤을까', '아저씨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정대의 손을 놓친 것에 용서를 빌고, 함께 정대를 찾아 나서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간절한 마음은, 텅 빈 방의 고요함과 어머니의 침묵 앞에서 무너졌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동호는 정대를 찾아야만 했다. 그 의무감과 죄책감이 그를 잠식했고, 결국 광주 도청의 민원봉사실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은숙 누나선주 누나를 만났다. 그들은 시신들을 수습하고 돌보는 힘든 일을 돕고 있었다. 은숙 누나는 차분했지만 슬픔에 잠긴 눈빛이었고, 선주 누나는 미싱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결국 그곳에 남아 시신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장부에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끔찍했지만, 가만히 집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진수 형도 그곳에서 만났다. 진수 형은 동호에게 "너는 아직 어리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거듭 권유했지만, 동호는 고집을 부려 끝까지 남았다. 그는 진수 형의 눈빛 속에서 굳은 결의와 함께 깊은 피로를 읽었었다.

도청은 살아있는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 그리고 오열하는 유족들이 뒤섞인 거대한 임시 공간이었다. 유족들이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이 멈추기를 동호는 멀리서 지켜보며 기다려야 했다. 한 유족이 뿜어내는 슬픔의 크기는 열다섯 살 소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유족들은 시신을 수습한 후 태극기로 관을 감쌌고, 진수 형과 은숙 누나의 주도 하에 짧은 추도식을 치렀다. 은숙 누나는 동호에게, 지금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것이며, 그들이 외치는 '나라'는 진짜 나라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설명해주었다. 시신들은 상무관으로 옮겨졌고, 그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새 관들이 끝없이 들어왔다. 관들이 쌓일 때마다 동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엄마와 작은 형이 끝내 동호를 찾아왔다. 엄마는 동호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너마저 이러면 안 된다"며 울부짖었다. 형 역시 간절하게 돌아가라고 울먹였지만, 동호는 "걱정 마세요. 곧 가겠다고요"라고 약속만 하고 그날 밤 도청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끔찍한 진실의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정대를 찾지 못했더라도,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다. 밤이 되자 도청 안은 더욱 비장한 침묵에 잠겼고, 동호는 왠지 모를 숙명 같은 것을 느꼈다.

마지막 날, 새벽이 되자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항쟁을 결의했다. 곧 계엄군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형들은 어린 학생들에게만은 제발 항복해서 살 길을 찾으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진수 형은 동호의 어깨를 잡고 신신당부했다. "너는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결국 네 명의 고등학생들과 동호는 2층에서 두 손을 들고 조용히 내려왔다. 살기 위해서, 형들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보다는 체념과 순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흥분한 장교는 그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고, 일렬로 걸어오던 다섯 명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동호는 그렇게 총에 맞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열다섯 살 소년의 삶은, 그 잔인한 봄날에 멈추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끝내 놓쳤던 친구 정대의 손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2장 검은 숨

총에 맞아 쓰러졌던 동호의 친구 정대는 이제 이 되어 세상에 남았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 정확히는 뼈와 살이 갈라진 곳에서 솟구치는 피가 멈출 때까지, 멀리서 도망치는 동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동호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정대는 심장이 멈춘 후에도 계속 피를 쏟아냈고, 몸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얼굴이 얇고 투명해진 것을 낯설게 내려다보았다. 혼이 된 자신의 모습은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한 듯했지만, 그 밀도와 무게는 완전히 달랐다.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기분이었다.

얼마 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시신들을 마치 짐짝처럼 다뤘다. 군인들은 정대의 몸을 들어 올려 군용 트럭 적재함에 던져 넣었다. 차가운 쇠판 위에 몸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곧 정대의 몸 위로 다른 사람들의 몸이 무참히 던져졌고, 십자(十) 모양으로 겹쳐 쌓였다. 숨 막히는 무게와 냄새. 정대는 주변의 수많은 혼들 사이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혼자라고 느꼈었다. 말 없는 고독이 정대의 혼을 감쌌다.

트럭은 시가지를 벗어나 들판 가운데의 텅 빈 길을 달렸다.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트럭이 멈추자, 군인들은 시신들을 덤불 숲으로 옮겨 차곡차곡 열 십자 모양으로 쌓아 올렸다. 그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생명을 모독하는 **‘몸들의 탑’**이었다. 정대는 아래에서 두 번째 시신에 끼어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그저 흙과, 어둠과, 그리고 차가운 살덩이뿐이었다.

자주빛 여명 무렵이 되어서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모든 것이 불분명한 시간이었다. 정대는 얼굴도, 말도 없는, 하지만 간이 크고 부드러운 어떤 그림자가 자신에게 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의 온기가 아닌, 형체 없는 어떤 존재였다. 둘은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은 몰랐지만, 온 힘을 기울여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의 교류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마치 차가운 시공간 속에서 잠시 손을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 그림자가 떨어져 나가자, 정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그를 휘감았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높은 곳의 달이 눈동자처럼 자신을 마주 본다고 잠시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것은 생명이 살지 않는 황량한 암석 덩어리일 뿐이라고 정대는 체념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허무뿐이었다.

정대는 죽기 전, 그저 키가 훌쩍 크고 싶었고, 체육 시간에 멋지게 푸시업을 잘하고 싶었던 열여섯 살 소년이었다. 꿈 많고, 장난기 넘치던 소년이었다. 이제 그의 몸은 차가운 덤불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죽인 이들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자신을 죽였는지에 대해 끝없이 생각했다. 그 답은 혼의 상태에서도 찾을 수 없는,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며칠 후, 세찬 비가 내렸다. 비는 시신 주변의 피를 씻어냈고, 물과 접촉한 시신들은 빠르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악취가 진동했지만, 혼인 정대에게 그 냄새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찾아왔다. 자정 전의 깊은 밤이었다. 그들은 시신들의 탑 위에 무언가를 부었다. 정대는 곧 그것이 석유라는 것을 알았다. 기름이 시신과 마른 덤불 위에 고르게 뿌려졌다. 그리고 마른 덤불에 불을 붙여 던졌다. 불길이 숲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썩어가던 몸들이 불 속에서 타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살이 익고, 터지고, 뼈가 드러났다. 그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 정대의 혼은 어느새 자신의 몸에서 멀어져 있었다. 몸에 얼른거리는 그림자, 즉 육체에 묶여 있던 잔존 감각들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자유를 얻었다. 육체에서 완전히 해방된 정대의 혼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곳은 동호였다. 동호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수천 개의 불꽃 소리와 함께 놀란 혼들이 사방으로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수많은 영혼들이 육체를 떠나 허공으로 솟구치는 소리였다. 정대는 직감했다. 그 순간, 동호가 방금 죽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대는 힘차게 그곳으로 날아간다면, 동호의 혼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는 손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얼음장 같은 새벽빛 속에서 정대의 혼은 발이 묶인 듯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동호의 혼이 솟구친 방향을 향해, 간절한 염원만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염원은 아무런 메아리 없이, 차갑고 광활한 새벽의 허공으로 흩어졌다.

 

3장 일곱개의 뺨

그날 도청을 빠져나왔던 은숙은 5년이 지나 스무 살 중반에 작은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다. 마지막 날, 시민군들이 여자들에게는 집으로 돌아가 살 길을 찾으라고 설득했었다. 은숙은 죽음이 두려웠고, 결국 도청을 나왔다. 나오기 직전, 하늘색 체육복 위에 교련복을 걸친 채 총을 매고 있던 동호의 모습을 보았고, 그를 잡지 못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군인들이 들이닥치자 은숙을 깊숙이 숨기고 거짓말을 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수대에서 다시 물이 솟아 나왔고, 은숙은 매일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물을 잠가 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나이 든 여사무원에게 이젠 다 잊고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었다.

입시에 실패한 후 어머니는 은숙에게 남들처럼 살고 잊어버려 달라고 애원했다. 은숙은 누구의 짐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서울의 대학에 갔지만, 캠퍼스에서도 트라우마와 악몽에 시달렸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작은 출판사에 취직했다. 그녀가 혼자 살아남는 것이 가장 두려웠고, 차라리 끝까지 버티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수배 중인 희곡 작가의 행방을 묻는 한 사내가 출판사에 들이닥쳐 은숙의 뺨을 일곱 대나 때렸다. 사내는 협박했지만, 은숙은 담담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뺨은 실핏줄이 터져 푸르죽죽한 피 반점처럼 새겨졌다. 그녀는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 가는 모습을 견디지 못했고, 살점 위에 피와 육즙이 고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출판하려던 원고는 검열을 받아 대부분의 문장에 먹 줄이 그어져 출판이 불가능해졌다. 은숙은 화장도 하지 않았고, 신이 빨리 늙기를, 생명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그 참혹한 기억 속에서도 여전히 허기를 느끼며 입맛이 돈다는 사실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이제 인간을 믿지 않았고, 어떤 진실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나중에 무대에 올려진 그 희곡을 보러 갔었을 때, 여배우는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고 말했다. 조명이 객석을 비추는 순간, 두 살 정도로 보이는 하얀 반소매 체육복 소년이 통로에 서 있었고, 은숙은 자신도 모르게 **“동호야”**라고 불렀다. 그녀는 소년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동호를 위한 끝나지 않는 장례식이었다.


4장 쇠와 피

그해 5월,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체포되었던 복학생 **나(화자)**는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이었다. 모두가 총구 앞에 섰던 날, 그는 순수한 자신을 발견했고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듯한 생생한 느낌이 있었었다.

그는 도청에서 대학 신입생 김진수와 함께 있었다. 진수는 시신 관리와 장례 준비를 총괄하며 어른처럼 행동했다. 마지막 날, 계엄군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무전이 들어왔을 때, 진수는 어린 학생들에게 항복하여 살 길을 찾으라고 굳센 어조로 말했다.

결국 체포된 후, 그들은 창살로 막힌 방들에 갇혔다. 군인들은 검정 볼펜을 왼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고문했고, 뼈가 드러날 때까지 계속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내 삶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 허용되는 것은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총이 없었던 이들은 먼저 석방되었지만, 극렬 분자들은 상무대에 남아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 방식은 더욱 정교하게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밥 한 줌과 김치만 있는 식사를 2인 1조로 나눠 먹게 했다. 군인들은 그들이 짐승처럼 싸우기를 노렸지만, 진수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인내했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았다.

진수는 특히 외모 때문에 개미들에게 물리는 변칙적인 고문을 당했다. 결국 나는 9년 형, 진수는 7년 형을 언도받았다. 하지만 형량은 무의미했다. 이듬해 군부는 사형수들까지 특사로 석방했다.

출소 후 진수를 만났지만, 우리는 둘 다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진수는 매형의 전파사를 도왔고, 나는 택시 운전을 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이따금 만나 술을 마셨고, 그러는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 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고,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다. 우리 몸속에는 그 여름의 조사실과, 검정 볼펜,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 뼈가 남아있었다. 언젠가 진수는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아. 지쳤어"라고 말했다.

그 해 겨울, 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나는 진수 없이 혼자 세상을 살고 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본다. 평범한 검정 볼펜을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인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5장 밤의 눈동자

그해 5월, 동호와 같이 시신을 돌보았던 선주는 충장로 양장점 미싱사였다. 그녀는 중학교 졸업 후부터 공장에서 일했고, 노동 운동을 하는 성희 언니를 만나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알게 되었다. 열여덟 살 때 노조 투쟁을 하다가 사복 형사에게 짓밟혀 장파열 진단을 받았고, 그 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직이 어려워지자 양장점에 미싱사로 일하고 있었었다.

그녀의 스물한 살, 그해 5월이 왔고, 이후 20여 년이 더 흘러 선주는 마흔세 살이 되었다. 그녀는 혼자 살았고, 지금은 어떤 단체에서 활동비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윤이라는 남자가 광주에 관한 논문을 쓴다며 연락을 해왔다. 그는 당시 구속되었던 여성들 중에서 증언자를 찾고 있는데, 그 증언들이 너무 간략하고 고통스러운 부분은 생략되었다며 증언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성희 언니는 선주에게 왜 그렇게 숨어 지내느냐고 물었었지만, 선주는 그런 언니를 용서하지 못했었다. 성희 언니가 노동 운동의 전설이 될 때, 선주는 광주에 남아 그 폭력의 한복판에 있었었다.

윤은 논문을 위해 그녀에게 기억해 달라고,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선주는 생각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30센티미터 나무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찍고 지나갔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켜 수혈받게 되었다고, 그리고 2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짧은 입맞춤, 뺨을 얼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다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몸을 증오하게 되었고, 모든 따뜻함과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었다고 증언할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봄과 같은 순간이 닥쳐온다면, 끝까지 남겠다고 손을 들었던 선택을 또다시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동호에게 호일에 싼 김밥을 나누어 먹고, 동호를 억지로라도 집으로 돌려보냈더라면 동호가 남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선주는 빈 공간을 향해, 어둠을 향해 자꾸만 자신에게 오고 있는 동호의 존재를 느꼈다. 동호가 왜 아직 살아 있는지를 물으려고 오는 건지를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었다.


6장 꽃 핀 쪽으로

동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후 가장 길고 깊은 고통의 세월을 견뎠다. 동호는 어머니 손으로 묻혔다. 관 뚜껑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본 아들의 얼굴은 너무나 해쓱했었다. 작은아들은 동호가 총 맞고 피를 흘려서 관이 가벼웠던 거라고, 이 원수는 자신이 갚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라에서 죽인 동생 원수를 무슨 수로 갚느냐고, 너까지 잘못될까 봐 절규했다.

이후 30년 동안, 작은아들은 친구들 중 제일 먼저 어깨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어머니는 그 아들이 아직도 원수 갚을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내려앉곤 했었다.

정대 남매의 아버지가 찾아와 실성한 사람처럼 애들을 찾아 헤맸고, 하던 일을 접고 사랑채에서 지내며 미친 듯이 관청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정대 남매를 들이지 않았더라면 동호가 애쓰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천벌을 받을까 봐 머리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잃고도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 자신이 쇠심줄 같다고 한탄했다. 남편이 병치레를 하자 그녀 혼자 유족회에 나갔고, 처음 보는 엄마들과 서로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위로를 나누었다. 구호를 외치다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부상자회 청년이 엄마들을 위해 울자 그녀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그녀는 책상 위로 올라가 살인자의 사진을 끌어 내리다가 발에 유리가 박힌 적도 있었고, "살인마 전두환, 내 아들 살려내라"며 싸웠다. 헤어질 때마다 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쓸며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없는 살림에도 출연금을 내서 서울 집회에 올라갔고,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쟁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었고, 그녀는 이 지옥에 자신만 남겨두고 가는 남편이 가엾은 건지 부러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어머니는 막내아들 동호의 중학생 학생증 사진을 오려 지갑 속에 지금까지 넣어 두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어머니는 꽃 핀 쪽으로, 햇볕이 드는 쪽으로 걸어가려 했었지만, 여전히 아들을 잃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 자체가 동호를 위한 끝나지 않는 장례식이었다.


7장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이 모든 이야기는 작가(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동호의 흔적을 찾고, 그날의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 가보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이 잔혹한 진실을 파헤치는 일은 작가에게도 고뇌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작가 역시 어렸을 때 우연히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한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검게 그을린 건물들, 흰 천을 두른 채 트럭에 실린 남자들, 반쯤 벌거벗겨진 채 실려 가는 시신들... 이 이미지들은 작가의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훗날 소설을 써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게 했다.

1년 반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는 세 줄을 쓰고 하루 종일 울기를 반복해야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소용돌이치는 상황과, 그 안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기록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내내,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었다.

작가에게 동호의 실존 인물 모델을 확인하고, 그 어머니를 인터뷰하는 과정은 큰 슬픔이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후에도 문재의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억지로라도 못 오게 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모습은 책 속의 회한과 일치했었다.

정치가 폭력을 만들고, 그 폭력이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순환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그 이후의 삶을 보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5월의 참혹함보다 더 잔인했던 그 가을, 그리고 5년, 10년, 30년이 지난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모나미 검은 볼펜'이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악몽으로 남아있었다. 그들의 삶은 그 순간에 멈춰 있었고,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작가에게 소년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동호의 혼이 현재를 찾아오는 것을 넘어, '지금 소년들이 오고 있는데, 우리는 소년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하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었다.

이 소설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인간은 폭력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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