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어린 장금이는 궁궐에 들어온 지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품고 궁에 발을 디뎠던 그 작고 불안했던 아이는, 어느덧 앳된 티를 벗고 어엿한 수라간의 생각시가 되어 있었다.
장금이는 키도 훌쩍 자랐고, 손놀림은 더욱 야무져졌으며, 명석함은 또래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장금이는 보통의 생각시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꽃 같은 호기심이었다. 궁중의 모든 생각시들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수라간의 엄격한 규칙과 관례를 오직 '외우고 따르는 것'만을 훈련받았다. 그러나 장금이는 달랐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왜?'라는 의문이 끝없이 샘솟았으며, 반드시 그 답을 스스로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깨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천성을 타고났었다.
이러한 장금이의 엉뚱한 호기심과 과학자 같은 탐구 정신은 매번 수라간 어른들을 당황하게 하고 또 놀라게 했었다. 궁궐의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공간인 수라간에서, 장금이는 틈만 나면 규칙을 뛰어넘는 실험을 감행하곤 했다.
“머리를 흔들어 보아라! 생각시가 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제대로 못 해? 음식하다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야 한다고 하질 않았느냐!” 한상궁 마마님은 장금이의 풀어진 머리채를 지적하며 언성을 높이셨다. 다른 생각시들이 고개를 숙이고 순종할 때, 장금이는 늘 새로운 의문에 빠져있었기에, 가장 기본적인 복장 규율조차 잊곤 했던 것이다.
그녀의 호기심은 평범한 식재료나 조리 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음식 땔감으로 쓰이는 참나무나 느티나무 말고 다른 나무를 쓰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었다. 수라간에서는 당연히 연기와 냄새가 적고 화력이 좋은 참나무와 느티나무만을 썼는데, 장금이는 이 두 가지만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밤이었다. 장금이는 몰래 참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팽나무, 심지어 소나무, 잣나무, 대나무 등 구하기 쉬운 땔감들을 종류별로 모아왔다. 그리고는 이들을 아궁이에 있는 대로 불을 지펴 보았다. 장금이는 각 나무가 타는 속도와 화력의 세기, 그리고 무엇보다 각 나무에서 나오는 연기가 음식에 어떤 미묘한 향과 맛을 더하는지를 확인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궁이에 너무 많은 불이 한꺼번에 붙었기에, 부엌 전체가 온통 새까만 그을음으로 뒤덮이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처소 부엌을 발견한 어른들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광경에 기함했었다.
“무엇을 하느라 그랬느냐! 도대체 음식 땔감으로 무엇이 좋은지 알아보려고 그랬다니, 이런 어리운 것을 보았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장금이는 물의 농도에도 관심이 많았다. 궁중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장시간 끓여 깊은 맛을 우려내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이 과정을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어 했었다.
또 솥에 담긴 물이 약한 불에서 얼마나 오래 졸아붙는지 알아보려 물을 모두 증발시켜 버리기도 했었다. 큰 가마솥에 담긴 귀한 식수를 약한 불에 종일 달여서, 결국은 바닥까지 완전히 졸아붙여 놓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수라간의 물은 한 방울도 귀한데, 장금이는 오직 **'시간과 농축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그 귀한 물을 모두 허비하고 만 것이었다.
그녀의 엉뚱한 시도는 함께 훈련받는 어린 생각시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었다. 심지어 솔방울 화로를 만들어 본다고 어린 생각시들을 시켜 나무 위에 올라가게 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장금이는 솔방울을 태워 만드는 화로가 일반적인 숯불 화로보다 은은하고 향긋한 열을 낸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그녀는 이 솔방울을 대량으로 모으기 위해 겁 없는 어린 후배들을 시켜 나무 위를 오르내리게 했던 것이다. 어린 생각시들이 나무 위에서 위태롭게 솔방울을 따는 모습을 본 상궁들은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질렀고, 장금이는 또다시 수라간의 질서를 어지럽힌 주동자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장금의 행동은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근본부터 파헤쳐야 한다는 그녀만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궁궐, 특히 수라간은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생명인 곳이었다.
결국 장금이는 그 엄청난 호기심 때문에 정상궁 마마께 열흘 동안 어린 생각시들과 설거지만 하라는 벌을 또다시 받고 말았다. 이 벌은 장금의 재능을 시기해서 주는 벌이 아니었다. 정상궁 마마께서는 장금의 비범함을 알고 있었지만, 왕실을 모시는 수라간에서 순종과 훈련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동기인 금영이는 이미 5년 전부터 수라 음식도 직접 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심지어 공주 마마의 특별 음식까지 최고상궁 마마님과 함께 만들고 있었기에, 매번 사고를 치는 장금이를 안타까움과 함께 내심 답답하게 여겼었다.
“언니, 참 속도 좋아요. 재료 손질 배우는 날인데 또 설거지라니. 또 해요, 어쩌려고 그래요?” 어린 동료들은 걱정했지만, 장금이는 묵묵히 자신의 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음식의 비밀에 대한 탐구심이 빛나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장금이의 천성이었던 것이다.
1. 공주 마마의 진지 거부와 수라간의 풍파
해설:
수라간은 지금 마치 폭풍우 전야처럼 숨 막히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나라의 어린 공주 마마께서 갑자기 식음을 전폐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공주 마마는 진지를 거부한 지 며칠이 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올려도, 공주 마마는 끝내 입을 열지 않으셨다.
이 일로 상감마마의 심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아니, 다 닷새나 걸린단 말인가? 공주 마마께서 진지를 거부하신 이후로 상감마마의 심려가 크신데, 이 다 닷새나 걸린다면 상감마마의 체통을 어찌하려고!" 수라간 최고상궁들은 상감마마의 걱정뿐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중전 마마와 대비 마마의 걱정까지 헤아려야 했기에 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왕실의 식탁을 책임지는 수라간의 입장에서는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는 것과 다름없는 심각한 사태였던 것이다.
최고상궁 마마님과 조카인 금영이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밤낮으로 고심하며 특식을 준비했었다. 그들이 올린 음식은 색깔도 곱고, 영양도 풍부한 진미였지만, 공주 마마는 이를 보시고는 고개를 흔들며 외면하셨다. 심지어 드시다가 뱉어내시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최상궁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의녀가 진맥을 한 후에도 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주 마마의 미각과 후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진단만 내렸을 뿐이었다. 의녀는 “음식을 거부하게 된 미각과 후각을 살리려면 시간이 걸려옵니다.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은 두어 숟가락 드셨으면, 점점 더 많이 드실 것이고, 다스리면 원래대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하고 말했지만, '닷새'라는 시간은 궁중의 위계를 생각할 때 너무나 길고도 위험한 시간이었다.
급해진 최상궁 마마님은 “다스는 안 된다! 당겨 먹어라! 어찌 되었든 당겨 봐!” 하고 소리쳤다. 결국 그녀는 일시적으로라도 공주 마마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향신료를 강하게 쓰는 방법까지 동원해 보았다. 강한 향신료는 일시적으로나마 식욕을 돋우는 약재가 들어있었기에,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공주 마마의 성품이 워낙 습기가 없고 말씀도 통 없으시니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수라간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결국, 최상궁 마마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장 근본적인 맛을 되찾기 위해 **장고(醬庫)**로 향했었다. 장고란 간장, 된장, 고추장 등 궁중 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장들이 보관된 곳으로, 맛의 깊이가 곧 수라간의 품격이었기에 이곳의 관리는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최상궁은 오래된 된장이라도 양념에 써서 깊은 감칠맛으로 공주 마마의 입맛을 되돌리려 했었다.
2. 장금이와 숯의 비밀
최상궁이 장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 그 안에서 뜻밖에도 장금이와 금영이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금영이는 장금의 옆에서 무언가를 은밀히 돕고 있는 듯했고, 장금이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최상궁이 불시에 들이닥치자 장금이는 깜짝 놀라 몸을 감추려 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장금이는 손에 들고 있던 숯 조각을 황급히 숨기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어, 어, 금영이구나! 된장에서 도대체 뭘 꺼낸 거야?”
금영이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장금이는 솔직하게 고백했다.
“어… 이, 이거… 저, 숯이요.”
장금이는 자신이 벌을 받아 설거지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한상궁 마마께 배운 공부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음식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미세한 요인들을 파헤치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장의 맛과 향을 개선하는 것에 몰두했었다.
“한상궁 마마님이 공부 배우라 하셔서 이것저것 해 보다가, 혹시 간장이나 된장, 식초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한번 넣어 봤어요.”
장금이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금영이는 속이 탔다. "얘는 그러니 최상궁 마마님께 매번 매를 맞지!" 금영이는 걱정하며 속삭였지만, 장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야, 이 식초는 맛이 싹 없어져 버렸잖아! 간장은 아주 좋아졌구나!”
장금이는 식초에 넣었던 숯 때문에 시큼한 맛이 약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어서 간장에 넣은 숯의 효과에 감탄했다. 장금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발견'**을 금영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내가 숯을 깨 봤더니 아주 작은 구멍으로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냄새를 잘 빨아들이는 거 같아요.”
장금이는 숯의 구조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숯이 가진 수많은 미세한 구멍, 즉 다공성(多孔性) 구조가 주변의 불순한 냄새 입자를 빨아들이는 **흡착력(吸着力)**이 뛰어나다는 과학적 원리를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이 원리 덕분에 간장 속에서 나는 군내, 즉 잡냄새가 사라져 맛이 훨씬 깔끔하고 좋아진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숯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궁중의 고유한 장맛을 과학적인 원리로 개선할 수 있다는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금영이는 장금의 명석함에 감탄하며 “정말 그래도 되겠어? 이건 한상궁 마마님께 얘기해서 다른 간장에도 넣자고 해도 되겠다!” 하며 흥분했었다. 장금이가 그토록 설거지 벌을 받으면서도 놓지 않았던 '쓸데없어 보이던' 호기심이, 바로 이 순간 궁중 음식의 난관을 해결할 실마리가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최상궁 마마님은 이 어린 생각시들의 대화를 듣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장금이가 발견한 **'숯의 비밀'**은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었다.
3. 정상궁 마마의 판단과 새로운 임무
해설:
장금의 지혜 덕분에 공주 마마의 위기가 해결되자, 궁궐은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공주 마마가 진지를 드셨다는 소식은 곧 상감마마와 중전 마마에게 기쁨을 안겨주었고, 수라간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정상궁 마마께서는 장금의 비범한 능력에 다시 한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장금은 비록 규율을 어겨 벌을 받았지만, 그 벌을 받는 중에도 음식의 비밀을 탐구하는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정상궁은 장금이가 앞으로 수라간에 얼마나 큰 보배가 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정상궁은 이 위기 해결의 공을 최상궁에게 돌렸다.
“최상궁. 어려운 난관을 잘 헤쳐 주었소. 비록 작은 생각시의 기지로 해결이 되었지만, 그 기지를 놓치지 않고 공주 마마께 올린 것은 최고상궁의 영민한 판단 덕분이었소.”
정상궁 마마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최상궁에게 다음 중요한 일을 맡겼다. 이는 단순히 공을 치하하는 것을 넘어, 수라간의 최고 권위와 실력을 시험하는 중대한 임무였다.
“이제 곧 다가오는 내전 마마의 생신 잔치 준비를 총괄하도록 하시오. 특히 잔치 음식 중 가장 중요한 전골은 그대의 손으로 직접 준비하여 올리시오. 수라간 최고의 실력자가 누구인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한상궁과 최상궁의 실력을 공식적으로 겨룰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상궁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눈빛을 번뜩였고, 그녀의 조카 금영이는 이미 최고상궁의 자리를 향한 꿈을 꾸며 마음속으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한편, 장금이는 다시 설거지터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는 설거지통에 담긴 숯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저 숯으로 또 무엇을 해볼까?" 하는 새로운 궁금증에 빠져있었다. 궁궐의 가장 낮은 곳, 설거지터에서 시작된 장금이의 위대한 탐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
4. 장금의 위험한 도움: 금계를 찾아서
해설:
수라간은 내전 마마의 생신 잔치 준비로 발 디딜 틈 없이 분주했지만, 그중 금영이는 말 못 할 절망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잔치에 사용될 귀한 금계(金鷄), 즉 황금 꿩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금계는 최상궁 마마가 큰아버님, 즉 최판술 대감에게 부탁하여 어렵게 공수해 온 비장의 재료였으며, 그 유실은 단순한 식재료 분실을 넘어 최씨 가문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중죄였다.
금영의 눈앞은 캄캄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최고상궁 마마님의 자리는 물론이고, 큰아버님의 상단에도 흠집이 날 것이다. 내가, 내가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다니…” 금영이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최고상궁의 자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궁중의 권력과 최씨 가문의 명운이 걸린 자리였으며, 금계의 유실은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금영이는 궁궐 벽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대체할 금계를 구할 방법은 오직 하나, 궁 밖으로 몰래 나가 큰아버님 댁을 찾아가는 것뿐이었다. 궁녀가 허락 없이 궁궐 밖을 나가는 것은 참으로 중죄였지만, 궁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잔치가 임박하여 금계가 없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직접 대체품을 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금영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그때, 장금이가 빨래를 널다 말고 구석에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는 금영이를 발견했다. 장금이는 금영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금영이는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으려 했으나, 장금의 진심 어린 걱정에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장금아, 나 이제 큰일 났다. 금계가 없어졌어. 마마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건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가문은 끝이야.”
장금이는 잠시 숨을 삼켰다. 금계는 사냥으로 잡는 귀한 꿩이지만, 일반 꿩과 달리 깃털이 화려하고 맛이 특별하여 왕실 연회에만 사용되는 최고급 식재료였다.
장금이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과거에 궁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 때 금영이에게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이 최고상궁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운명일지라도, 지금 금영이 처한 위기는 사람의 목숨과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이었다.
“금영아, 혼자 나가는 것보다 내가 돕는 게 나을 거야. 나한테 받은 데가 있거든.”
장금이는 금영이를 돕기로 하고, 곧바로 덕구 아저씨의 지인을 찾아 나섰다. 궁녀 신분으로 궁 밖을 몰래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덕구 아저씨는 궁 안에 채소나 물품을 납품하는 사람들 중 인맥이 넓은 것으로 유명했다. 금영이는 덕구 아저씨의 아내에게 간절히 부탁하여 궁 밖으로 나가는 방편을 어렵게 마련했다. 궁 밖의 짐을 나르는 수레 짐 속에 몸을 숨긴 채, 금영이는 궁궐의 담장을 넘었다.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가문의 운명을 짊어진 것이었다.
금영이가 큰아버님 댁으로 향할 동안, 장금이는 궁 밖에 있는 덕구 아저씨의 인맥을 동원하여 금계를 대체할 수 있는 특이한 식재료를 알아보는 일에 집중했다. 궁궐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금영이는 마침내 큰아버님 댁에 도착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큰아버님은 타지 상인과의 거래를 정리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금계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금영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할 뻔했지만, 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절망에 빠진 금영이에게 장금이는 덕구 아저씨를 통해 알아본 정보를 전했다.
“금영아, 이 근처에 아저씨의 아는 분이 있는데, 금계는 아니더라도 궁중 전골에 버금가는 맛을 낼 수 있는 특이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을 거래! 우리가 급하게 찾고 있는 그 식재료가 여기에 있다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 봐!”
장금이는 금영이에게 술시(오후 7시~9시) 안에 궁궐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술시가 지나면 궁궐의 모든 문이 굳게 닫히고, 그 시간 이후에 발각되면 변명의 여지 없는 사형감이었다.
장금이는 간절한 노력 끝에 덕구 아저씨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마침내 대체할 특이한 재료, 아마도 금계만큼 귀하고 깊은 맛을 내는 산해진미를 구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술시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 시진도 되지 않았다. 장금이는 가슴을 졸이며 금영이를 기다렸고, 금영이는 금계를 싣고 궁궐로 돌아오는 수레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야 했다. 이들의 목숨을 건 비밀스러운 임무는, 이제 궁궐의 문이 닫히기 직전에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5. 생각시 박탈과 추방: 덧없는 꿈의 끝
해설:
장금이는 간절한 노력 끝에 덕구 아저씨의 인맥을 동원하여 마침내 대체할 금계를 구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녀가 손에 든 자루 속에는 금계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깊은 산에서 온 귀한 사냥감이 들어 있었다. 장금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다. 이제 남은 것은 술시(戌時, 오후 7시~9시)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금영이와 합류하여 궁궐 안으로 무사히 잠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장금의 운명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급변했다.
장금이가 좁은 골목길을 돌아 궁궐의 후문 쪽으로 재빨리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삿갓을 쓴 수상한 자를 뒤쫓던 포졸 무리가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장금이가 있는 골목으로 들이닥쳤다. 포졸들은 도망치던 간자와 장금이를 한 패거리로 오인했다.
“저기 서지 못할까! 네 이놈! 왕실의 물건을 훔치고 달아나는 자가 아니냐!” 포졸들은 장금이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장금이는 당황하여 손에 든 자루를 꽉 쥐었다. 자루 속의 귀한 사냥감을 혹여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포졸들은 이 모습을 보고 **장금이를 엉뚱하게도 외부의 밀전(密傳)을 하는 자, 또는 귀한 궁중 문서를 훔치려는 간자(間者)**로 오해하고 말았다.
“이것이 분명 귀한 물건이 든 자루일 것이다! 어서 놓지 못할까!”
포졸들은 금계의 대체품이 든 자루를, 마치 국가 기밀이 담긴 지도를 가진 자인 양 착각했던 것이다. 장금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포졸들에게 결국 제압당하고 포박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오직 금영이를 돕고자 했던 선의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중죄로 변해버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해설:
한편, 금계의 대체품을 구한 기쁨을 안고 궁궐 근처로 돌아온 금영이는 홀로 궁으로 돌아왔다. 술시의 종소리가 울리기 직전, 그녀는 덕구 아저씨 내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궁궐 문을 통과했다. 금계는 구했지만, 장금이를 포졸들에게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은 금영이의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내가… 장금이를 버리고 왔어. 궁녀의 신분으로 궁 밖을 나선 것은 장금이도 마찬가지인데, 왜 나만 무사히 돌아와야 하는가.'
금영이는 자신이 살기 위해, 그리고 최씨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친구를 버렸다는 사실에 시달리며, 잔치 준비를 하는 내내 온몸을 떨었다.
해설:
다음 날 새벽, 수라간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궁 안으로 잠입하려던 장금이가 어젯밤 수상한 자로 체포된 후, 오늘 아침 포졸들에게 붙잡혀 수라간 한복판으로 끌려왔기 때문이었다.
장금이의 포박된 모습을 본 최상궁과 한상궁 모두 이 사실에 경악했었다.
“장금아! 네가 어찌…” 한상궁은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고, 장금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걱정과 분노, 그리고 회한으로 가득했다.
최상궁은 이 상황을 즉시 자신들의 약점을 가리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궁녀가 감히 궁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다니! 이는 왕실을 기만하는 중죄니, 즉시 의금부로 넘기시오!”
그러나 장금이를 돕고자 나섰던 금영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자신이 숨긴 진실이 장금의 목숨을 앗아갈까 두려웠지만, 가문의 명예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비겁함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해설:
결국 이 **‘생각시 장금의 무단 외출 및 간자 오인 사건’**은 수라간을 넘어 궁궐 전체의 큰 문제로 불거지고 말았다. 특히 공주 마마의 병환을 고친 직후에 터진 이 사건은, 수라간의 규율이 땅에 떨어졌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 되었다.
정상궁 마마는 더 이상 사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수라간 최고 책임자인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어린 생각시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관리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라며 모든 책임을 지고 벌을 받기로 했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생각시들이 궁궐 밖을 드나들며 사사로운 일에 연루된 것은 모두 이 종의 잘못이옵니다. 규율을 엄히 다스리지 못한 죄, 달게 받겠나이다.”
정상궁 마마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전하의 명은 단호하게 내려졌다. 궁궐의 기강은 왕실의 권위와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정상궁은 6개월간 녹봉을 삭감당하는 벌을 받았고, 그녀의 아래에 있던 한상궁과 최상궁은 상선 상궁에서 중찬 상궁으로 강등되었다. 이는 최고상궁 후보로서의 입지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리고 가장 혹독한 벌은 장금이에게 내려졌다.
장금이는 궁 밖으로 나갔다는 중죄 때문에 생각시 직급을 박탈당하고, 영원히 궁궐 밖으로 추방되는 판결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열 살 남짓.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평생 궁궐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천민의 신세로 되돌아가는 절망적인 형벌이었다.
해설:
추방 명령이 떨어진 날, 장금이는 짐이 든 작은 보따리를 들고 수라간의 마지막 문을 나섰다. 그녀는 울음을 참으며 한상궁 마마에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마마님… 죄송합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한상궁은 장금이의 작은 어깨를 안아주었지만,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상궁은 어린 시절 장금이가 **“함께 노력하여 최고상궁이 되어보자”**고 천진하게 손가락을 걸었던 약속을 떠올렸다. 장금이는 미각을 타고난 천재였고, 한상궁에게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수라간의 참된 정신을 이어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장금아… 내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너의 그 마음을… 그 선한 마음을 내가 알아주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한상궁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한 처지에 미안함을 금치 못했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최상궁 가문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일어난 일임을 짐작했지만, 증거를 댈 수 없었기에 억울한 장금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장금이는 그렇게 미각을 꽃피우려 했던 꿈의 무대, 수라간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궁궐의 높은 담장을 뒤로 하고 걷는 어린 장금이의 모습은, 꿈과 희망이 좌절된 채, 혹독한 세상으로 내던져진 가여운 영혼처럼 쓸쓸하기만 했다.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굳은 결심의 불꽃이 작게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