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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보다 귀한 이념은 없다"ㅣ태백산맥 제1부 <한(恨)의 모닥불> 제1권 ㅣ조정래 대하소설ㅣ

by 작은집 큰행복 202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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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보다 귀한 이념은 없다"

태백산맥 제1부 <한(恨)의 모닥불> 제1권 

1. 일출 없는 새벽

1945년 8월, 해방의 환호는 벌교의 갯벌만큼이나 축축하고 끈적한 불안 아래로 곧 가라앉았다. 일본의 철수와 함께 찾아온 것은 자주 독립 국가의 희망이 아니라, 오랜 억압 아래 응축되었던 계급적 갈등과 증오의 폭발적인 분출이었다. 벌교 읍내는 두 개의 적대적인 그림자 아래 질식하고 있었다.

 

동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범우는 읍내를 걸을 때마다 심장에 꽂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파리 코뮌의 역사와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달달 외웠으나, 벌교의 현실은 교과서 속의 어떤 이념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야만 그 자체였다. 그의 학식은 그를 중립이라는 고독한 감옥에 가두었다. 그는 좌익의 총칼과 혁명적 열정에 동의할 수 없었고, 우익의 위선과 구시대의 수구적 탐욕에도 가담할 수 없었다. 그의 길은 오직 진실만을 기록하는 칼날 위의 길이었다.

 

읍내 경찰서 앞에는 해방 전 일본 순사들과 똑같은 자세로 새로운 조선인 경찰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더욱 거만하고 무자비했으며, 제복에서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흘러나왔다. 이들은 읍내의 대지주 박승도와 정현동의 막대한 자본력과 정치적 후원 아래 조직된 사병과 다름없었다. 김범우는 경찰들의 등에 지주들의 끈적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보았다. 이들이 외치는 **‘질서 유지’**는 곧 **‘기득권 보호’**의 동의어였다.

 

해방 직후 조직되었던 **‘인민 위원회’**는 권력 다툼으로 인해 순식간에 좌익과 우익으로 분열되었다. 좌익은 조계산 깊은 숯막을 중심으로 농민들을 조직했고, **“토지는 농민에게!”**라는 구호는 굶주린 사람들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 반면, 우익은 경찰과 함께 우익 청년단을 조직하여 무장했다. 그들의 표적은 오직 **‘공산당 폭도’**를 척결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지주에게 대항하는 모든 소작농이었다.

 

김범우는 대지주 박승도의 집 앞에서 멈춰 섰다. 박승도의 저택은 조선의 전통적인 한옥이었으나, 그 거대한 기와 지붕 아래에는 수백 년간 소작농들의 피와 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대문 앞에는 어머니를 잃은 한 청년이 망연자실 서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최영일, 그의 어머니는 박승도의 마름에게 쌀을 빼앗긴 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김범우는 청년의 분노와 눈물을 보았다. 이 청년의 고통은 이념을 초월한, 원초적인 계급적 증오의 발화점이었다.

 

김범우는 자신이 유학하며 배웠던 서구의 민주주의 이론이 이 땅에서는 철저히 무력함을 깨달았다.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나 꽃필 수 있는 사치였다. 굶주림과 억압이 지배하는 벌교에서, 민중들은 법과 질서가 아닌, 당장의 밥과 복수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염상진의 폭력 혁명이 설득력을 얻는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그는 밤이 되자 읍내 뒷골목을 걸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의 울음소리와, 저 멀리 산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였다. 그는 자신이 이 시대의 모든 비극을 담아낼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펜은 총과 칼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없었으나, 폭력의 시대가 끝난 후, 역사의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등불이 될 것이라 믿었다. 김범우는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이 땅에 일출 없는 새벽이 드리워졌다. 피할 수 없는 내전의 전조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의 심장은 이 거대한 비극의 예고 앞에서 무겁게 고동쳤다. 그는 지식인의 고독한 십자가를 지고 벌교의 격랑 속으로 들어섰다.

2. 가슴으로 이어진 물줄기

김범우는 이념의 허상을 걷어내고 민중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읍내를 벗어나 소작농의 삶의 현장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벌교와 보성 사이의 황량한 들판에 위치한 **‘사동 마을’**이었다. 해방된 지 1년이 가까워지도록 사동 마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주 박승도의 마름은 여전히 마을을 지배했고, 농민들은 희망 없는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동 마을의 천봉 노인은 김범우에게 수십 년간 이어진 착취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목소리였으나, 그 내용만큼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증언이었다.

 

“선생님, 박승도네 마름이 쌀을 떼어갈 때는 마름의 자를 썼습니다. 우리가 쓸 때 쓰는 자보다 길이가 5푼이나 더 길었습니다. 그들은 **‘지주의 쌀’**이라며 다른 자를 썼습니다. 추수철이면 마름이 곡간에 와서 직접 도장을 찍습니다. 벼를 쌓아 올릴 때도 도리질을 한 다음, 마름이 그 위에 올라가서 밟아 쌀알 사이의 공기를 모두 빼냈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쌀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한 가마가 열 가마가 되는 마술이었습니다.”

 

노인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잔뜩 구부러진 허리와 뼈마디가 굵어진 손은 일제와 지주들에게 바쳐진 50년의 세월을 웅변하고 있었다. 노인의 아들은 일제 징용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고, 손자들은 여전히 배를 곯고 있었다. 해방은 그들의 삶에 단 하나의 쌀알도 보태주지 못했다.

 

천봉 노인은 이어서 정치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리가 해방이 되어서 **‘농민 조합’**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우리끼리 힘을 합쳐서 정당한 소작료를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읍내 경찰이 와서 농민 조합 지도자 세 명을 잡아갔습니다. 그들에게는 **‘빨갱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땅을 달라는 말이 빨갱이 소리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지주 편이었습니다.”

 

김범우는 노인의 증언 앞에서 자신의 모든 지식과 이념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좌익의 **‘계급 투쟁’**이 교조적인 이론이 아니라, 천봉 노인의 굶주린 배와 찢어진 옷에서 솟아난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외침이었음을 깨달았다. 노인의 **울분과 한(恨)**은 김범우의 가슴을 때렸고, 두 사람의 마음은 이념을 초월한 인간적인 연대라는 이름의 하나의 물줄기로 이어졌다.

 

그는 다시 정현동을 찾아갔다. 김범우는 정현동에게 천봉 노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현동은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김 군,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네. 농업 경영에는 자본과 위험 감수가 따른다네. 지주들은 법적으로 정당한 소작권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 사유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네. 자네의 그 연민은 결국 국가의 질서를 무너뜨릴 폭력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감정일 뿐이야.”

 

정현동의 논리는 서구 법률의 형식을 완벽하게 갖춘 방패였다. 그러나 김범우는 그 법률 뒤에 숨겨진 박승도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보았다. 김범우는 정현동에게 소리쳤다. “법이란, 굶주린 자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면 살인 도구에 불과하오! 당신이 지키려는 질서는 불의를 영속화시키는 낡은 질서일 뿐이오!”

 

이 대화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지성의 충돌이었다. 김범우는 자신의 고독한 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염상진의 무장투쟁은 반대하지만, 천봉 노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중의 고뇌를 짊어져야 했다. 이 고독한 물줄기야말로 그를 시대의 양심으로 만들었으나, 동시에 가장 위험한 중립에 세워 놓았다.

3. 민족의 발견

김범우는 벌교 읍내에서 벌어지는 좌우익의 선전전을 관찰하며, ‘민족’이라는 신성한 단어가 어떻게 계급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오용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기록했다. 해방 후, 모든 단체가 **‘민족’**을 외쳤으나, 그 실상은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을 죽이는 비극적인 역설이었다.

 

읍내 광장에서 열린 **우익 청년단 주도의 ‘민족 통일 궐기 대회’**는 그 위선의 극치였다. 연단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부를 축적한 유지들이 늘어섰다. 대지주 박승도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연설했다. 그의 목소리는 애국심으로 가득 찬 듯했으나, 김범우는 그에게서 잃어버릴 재산에 대한 극도의 공포만을 읽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합니다! 공산당은 우리 민족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전통적인 윤리를 파괴하는 외세의 붉은 물결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이 괴물을 척결해야만, 진정한 민족 국가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연설은 **‘하나의 민족’**을 외쳤으나, 그들이 말하는 민족에는 소작료 때문에 굶어 죽는 농민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민족은 **‘재산과 권력을 공유하는 자신들의 계급’**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민족 통일’**은 곧 **‘지주 계급의 영구적인 지배’**를 의미했다.

 

김범우는 밤이 되자 조용히 좌익의 비밀 집회 장소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흙먼지 묻은 소작농과 땀 흘리는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다. 염상진은 낮은 목소리였으나 쇠를 씹는 듯한 단호함으로 그들에게 연설했다.

 

“지주들이 민족을 외친다고? 그들이 우리에게 쌀 한 톨 더 주었소? 그들은 일제에 빌붙어 우리 민족의 피를 빨아먹은 반민족 행위자들이오! 계급 해방 없이는 민족 해방도 없소! 그들의 민족은 탐욕의 민족이오. 우리의 혁명은 바로 이 땅에서 진정한 민족을 건설하는 과정이오!”

 

염상진의 주장은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는 힘이 있었고, 굶주린 농민들에게는 강력한 진실로 다가왔다. 그들에게 **‘민족’**은 계급적 억압에서 해방된 노동자와 농민의 공동체를 의미했다.

 

김범우는 이 두 개의 민족 개념 사이에서 고뇌했다. 양측 모두 ‘민족’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계급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김범우는 이념의 껍데기를 모두 벗겨내고 진정한 민족의 얼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발견한 민족의 실체는 이념의 깃발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읍내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순박한 부부, 갯벌에서 꼬막을 캐어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이름 없는 아낙네, 그리고 좌우익의 감시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김범우는 이들의 소박한 삶과 맺힌 한이야말로 민족의 진정한 영혼임을 깨달았다. 이념이 이들을 도구로 삼을 때, 그 이념은 비인간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민족의 비극은 외세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계급적 증오와 착취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이념의 광풍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언제나 이름 없는 민중이다’**라고 기록했다. 김범우의 고독한 통찰은 그를 역사의 준엄한 증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어느 쪽의 피도 묻히지 않은, 가장 순수한 민족의 목소리를 기록하고자 했다.

4. 소화, 하얀 꽃이라는 이름의 무당

벌교 읍내의 가장 후미진 골목, 습기가 가득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소화의 당집이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운명을 점치는 무당이 아니라, 이 시대 민족의 짓밟힌 영혼과 억눌린 무의식을 대변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통로였다. 그녀의 이름 **‘소화(素華)’**는 **‘하얀 꽃’**이라는 의미였으나, 그녀의 삶은 피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소화의 굿은 벌교 민중에게 이성을 초월한 해방구였다. 그녀가 무당복을 입고 작두 위에서 춤을 추고 신을 받을 때, 사람들은 계급, 이념, 그리고 당장의 굶주림을 잊었다. 그녀의 몸짓은 억압받은 자들의 울분을 폭발시켰고, 억울하게 죽은 넋들의 통곡을 대신했다. 굿판은 슬픔과 광기, 그리고 원초적인 해소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

 

김범우는 소화의 굿을 인간 정신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으로 이해했다. 좌우익이 정치적 구호로 민중을 끌어들이려 할 때, 소화는 천 년을 이어온 한(恨)의 가락으로 그들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육자배기 가락은 지주에게 수탈당한 농민들의 비명이었고, 전쟁터로 끌려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절규였다.

 

염상진은 소화의 이 민중적 영향력을 가장 먼저 간파했다. 그는 소화를 혁명의 나팔수로 삼으려 했다. 염상진은 소화에게 **‘해방’과 ‘평등’**의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가사를 주었고, 그녀의 굿을 통해 민중의 분노를 조직적인 혁명의 에너지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소화의 묘한 아름다움과 신비한 카리스마는 좌익 세력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소화의 노래가 시작되면, 농민들은 칼을 든 혁명가가 될 용기를 얻었다.

 

반면, 정현동을 비롯한 우익 지식인들은 소화를 미신과 퇴폐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멸시했다. 그들의 서구적 이성과 합리주의는 소화가 대변하는 민족의 원초적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현동은 그녀를 **‘근대 국가 건설에 방해가 되는 구시대의 잔재’**로 보았으며, 청년단을 시켜 그녀를 탄압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특히 청년단의 간부 중 일부는 소화의 육체적인 매력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을 품고 있어, 그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소화의 삶은 순수함이 짓밟히는 시대의 비극 그 자체였다. 그녀는 정치와 이념에 관심이 없었으며, 오직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일만이 그녀의 사명이었다. 하지만 이념의 시대는 회색 지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순수한 영혼은 좌우익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다. 그녀는 민족의 정신적인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냈으며, 그 고통은 그녀를 가장 고독한 예언자로 만들었다.

 

김범우는 소화에게서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족의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그는 소화의 굿판이 총칼이 아닌, 원초적인 예술의 힘으로 이 시대를 기록하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그는 소화의 비극적인 운명과 아름다움을 자신의 노트에 기록했다. 그녀는 이념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민족의 깊은 근원을 상징했으며, 김범우의 기록 속에서 가장 슬프고도 강력한 진실로 남았다. 그녀의 존재는 총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인간적인 연민의 불씨였다.

5. 조계산 숯막

김범우는 염상진과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이자, 총칼이 아닌 펜으로 하는 최후의 경고를 전하기 위해 다시 조계산 깊은 곳의 숯막으로 향했다. 읍내의 번잡함과 위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숯막은 세상의 불의에 맞서는 열정과 고독, 그리고 폭력적인 혁명의 그림자가 뒤섞인 **성지(聖地)**와 같았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는 김범우의 발걸음은 고독한 사색으로 가득했다. 그는 이 산길을 오를 때마다 자신의 지성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달았다. 숯막에 도착하자, 공기는 나무 타는 연기, 땀 냄새, 그리고 훈련하는 젊은 대원들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염상진은 낡은 군복 차림으로 김범우를 맞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인간적인 연민을 넘어선, 혁명적 사명감으로 가득 찬 강철 같은 의지를 담고 있었다.

 

염상진은 김범우에게 좌익의 구체적인 무장 봉기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김 선생, 우리는 더 이상 지주들의 폭력과 미군정의 기만을 좌시할 수 없소. 우리의 혁명은 토지 해방으로부터 시작될 것이오. 지주들의 땅을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 분배하고, 반민족 행위자들은 인민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이오.” 염상진은 숯이 담긴 바구니를 막대기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계획은 치밀한 정보 분석과 냉혹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김범우는 상진의 계획에 담긴 민중 해방의 열망은 인정했으나, 그 수단의 잔혹함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상진 동지, 나는 당신이 말하는 계급 해방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않소. 하지만 당신의 칼날이 무고한 피를 흘린다면, 당신의 혁명은 결국 또 다른 독재와 폭력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오. 피를 부르는 혁명은 결국 피를 마시는 괴물을 낳을 뿐이오. 당신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민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오!”

 

염상진은 김범우의 말을 듣고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은 깊은 조롱과 체념이 뒤섞인 것이었다. “평화? 김 선생, 당신은 책상 위의 이상론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소! 박승도와 정현동이 스스로 무릎을 꿇고 땅을 내놓을 것 같소? 그들은 지금 미군의 총을 등에 업고 우리를 학살할 계획을 짜고 있소! 당신이 말하는 평화는 저들의 총칼을 받아들이라는 굴종일 뿐이오! 우리의 폭력은 수백 년간 당해 온 억압에 대한 정당방위요, 민중의 생존권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오!”

 

숯막 안에는 안창민을 비롯한 젊은 혁명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김범우의 주장을 들으며 나약하고 부르주아적인 지식인의 궤변으로 치부했다. 그들의 눈에는 빨리 읍내로 달려가 지주들의 불의를 심판하고 싶은 열망만이 가득했다. 그들의 혁명적 순수함은 이성적인 비판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다.

 

김범우는 염상진에게 자신의 최종적인 입장을 전했다. “나는 당신의 총을 들 수 없소. 나는 당신의 위대한 꿈과 그 꿈이 낳을 무서운 그림자를 모두 기록할 것이오. 나의 펜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 가장 고독한 역사의 거울이 될 것이오. 나는 총칼의 시대에 양심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할 것이오.”

 

염상진은 한참 동안 김범우를 응시했다. “당신은 역사의 방관자로 남을 것이오. 투쟁하지 않은 자는 역사에 기록될 자격도 없소!” 그는 결국 김범우의 등을 떠밀듯 보냈다.

 

김범우는 숯막을 내려왔다. 그의 등 뒤로 숯 굽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다가올 피의 숙청을 예고하는 검은 장막처럼 보였다. 김범우는 이제 좌우익 모두에게 의심받는, 가장 고독한 기록자가 되었다. 그의 심장은 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며 고통스럽게 뛰고 있었다.

6.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

김범우는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라는 염상진의 처절한 외침이야말로 이 시대 모든 비극의 핵심을 꿰뚫는 진실임을 확신했다. 그는 이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 대지주 박승도의 만행과 미군정의 실책을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벌교의 대지주 박승도는 해방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수탈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특히 소작농 Gil-man (길만) 노인의 비극은 벌교 민중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했다.

 

길만 노인은 평생을 박승도의 땅에서 소작했으며, 그의 아내는 결핵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1946년, 수확기에 예기치 않은 태풍이 덮쳐 벼농사를 망쳤다. 길만 노인은 박승도의 마름에게 소작료 감면을 간청했다. 그러나 마름은 박승도의 지시라며 **‘단 한 톨의 쌀도 감면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마름은 노인의 유일한 재산인 황소를 끌고 가려 했다.

 

길만 노인은 마름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 소는 우리 아내가 먹을 마지막 약값입니다. 제발 소만은…!” 마름은 노인의 호소를 비웃으며 말했다. “네 마누라 목숨이 지주님의 쌀보다 중하냐? 빨갱이 같은 소리 그만하고 소 내놔!” 결국 소는 끌려갔고, 길만 노인의 아내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잃은 길만 노인의 분노는 개인적인 슬픔을 넘어 계급적 증오로 폭발했다. 그는 읍내 경찰서와 우익 청년단을 찾아가 박승도를 고발하려 했으나, 경찰은 그를 정신 나간 늙은이 취급하며 쫓아냈다. 길만 노인은 국가가 자신을 버렸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좌익은 복수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잃어버린 인간 존엄성을 되찾는 길이었다. 노인은 곧바로 조계산으로 올라가 염상진의 조직에 합류했다.

 

김범우는 이 비극의 책임이 지주 계급뿐만 아니라, 해방 후 정부의 실책에도 있음을 명확히 했다. 미군정은 토지 개혁을 즉각 시행할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기존의 지주 계급을 안정적인 통치 협력자로 보았으며,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미군정의 이러한 **‘착취 방조’**는 농민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구호는 지주들과 미군이 만들어낸 새로운 억압의 사슬에 불과했다.

 

김범우는 자신의 노트에 기록했다. 공산주의 이념이 벌교에서 뿌리내린 것은 이념의 우수성 때문이 아니라, 오직 지주들의 잔혹한 착취라는 현실적인 모순이 그 이념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박승도와 같은 지주들이야말로 좌익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선동가였으며, 미군정이 그들의 폭력을 합리화시켜 주었다. 이처럼 국가가 자신의 국민을 버리고 착취를 방치할 때, 그 국민은 국가에 대항하는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범우는 이 비극적인 인과 관계를 후대에 전함으로써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구하고자 했다.

7. 그리고 청년단

벌교 읍내의 치안은 이제 법과 경찰의 영역이 아니라, 정현동이 이끄는 우익 청년단의 통제 아래 있었다. 정현동은 냉철한 법률가였으나, 그의 지성은 폭력을 가장 합법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다. 청년단은 경찰의 묵인 하에 공식적인 테러 집단으로 군림하며 벌교 민중에게 공포 정치를 강요했다.

 

청년단에 가입한 단원들은 주로 출세를 갈망하는 하층민 젊은이, 지주들의 사병, 그리고 복수심에 찬 마름의 아들들로 구성되었다. 정현동은 그들에게 **‘공산당 척결’**이라는 애국적인 명분을 부여하고, 그 뒤에 숨겨진 개인의 탐욕과 증오를 폭발시켰다. 그들의 복장은 군복과 흡사했으며, 손에는 날카롭게 깎은 곤봉과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김범우는 청년단의 조직적인 테러 행위를 상세히 기록했다. 읍내 시장에서 좌익 신문을 읽던 늙은 지식인이 청년단에게 붙잡혔다. 청년단은 그를 읍내 시계탑 아래로 끌고 가 **‘반동 분자’**라며 공개적으로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그들은 구타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는데, 이는 애국 구호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야만적인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장면이었다.

 

정현동의 지시는 매우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그는 좌익 인사를 색출하는 데 지식인적인 분석력을 동원했으며, 심리적인 압박을 통해 좌익 조직을 내부에서부터 와해시키려 했다. 그는 **‘좌익과의 협력자는 곧 민족의 반역자’**라는 논리를 퍼뜨려, 중립 지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우익에 강제로 편입시켰다.

 

청년단의 활동은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들은 밤마다 좌익으로 의심되는 가정을 급습하여 물건을 부수고 가족들을 위협했으며, 공포심을 이용하여 마을 사람들의 입을 봉했다. 특히 마름의 아들인 청년단 간부 황태수는 과거 좌익에게 수모를 당한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가장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폭력은 이념의 옷을 입었으나, 그 속은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가득 찬 짐승 같았다.

 

김범우는 정현동의 냉정한 이성과 폭력의 결합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규정했다. 정현동은 법과 질서의 허울을 뒤집어쓴 채 합법적인 테러를 자행했다. 그의 폭력은 염상진의 감정적인 혁명 폭력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파괴적이었다. 김범우는 자신의 펜으로 정현동의 가면 뒤에 숨겨진 야만적인 얼굴을 폭로하고자 했다. 이 청년단의 무자비함은 좌익 무장투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불쏘시개가 되었으며, 벌교는 피할 수 없는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8. 이념 이전의 인간

좌우 이념의 격렬한 대결이 벌교 전체를 집어삼키는 동안, 김범우는 이념의 광풍 속에서 짓밟힌 평범한 개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이념이 약속한 이상이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목격하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가 만난 강기오는 읍내에서 가장 손기술이 좋기로 소문난 목수였다. 강기오는 좌익이나 우익, 그 어떤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가족을 위해 좋은 집을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비극적인 운명에 휘말렸다.

 

좌익 조직원들이 은신처 마련을 위해 그에게 비밀리에 목공 일을 부탁했다. 강기오는 돈을 받고 일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정현동의 청년단에게 알려지자, 청년단은 그에게 **‘빨갱이 부역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청년단은 그의 집에 쳐들어와 그의 목공 도구들을 부수고 협박했다. “다시는 빨갱이 집을 짓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네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

 

이후 읍내 사람들은 공포심 때문에 아무도 강기오에게 일감을 주지 않았다. 강기오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좌익의 산속 은신처로 들어가 목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은 강기오의 평화로운 삶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그를 강제로 혁명 전선에 끌어들였다. 강기오는 ‘살기 위해 빨갱이가 된’ 비극적인 인간이었다.

 

또 다른 희생자는 서재호라는 이름의 노년의 학자였다. 서재호는 읍내에서 아이들에게 천자문과 사서삼경을 가르치며 순수한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좌우 이념을 **‘시대의 조류’**로만 바라보았을 뿐,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상진의 조직은 그에게 **‘민중 계몽’**이라는 명목으로 혁명적인 사상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라고 강요했다. 반면, 정현동의 청년단은 그에게 철저한 반공 사상을 주입할 것을 명령했다.

 

서재호는 이 양측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순수한 학문 영역이 이념의 선전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붓을 꺾고 고향을 떠나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침묵은 이념의 광기가 지성의 영역마저 파괴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증거였다.

 

김범우는 강기오와 서재호의 삶을 기록하며 이념 이전의 순수한 인간애가 어떻게 짓밟히는지 뼈아프게 느꼈다. 그는 이념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파괴하는 폭력적인 존재로 전락했음을 깨달았다. 김범우는 이 고독한 윤리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좌우익의 모든 회유와 협박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기록이 이념의 광기가 지나간 후, 사람들이 인간의 본질과 존엄성을 되찾게 해주는 안내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9. 문딩이 가시내, 팔자도 참 험허게 변했다

벌교 읍내에서도 가장 외면당한 곳,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문둥이 마을’**은 이념의 격랑 속에서 가장 잔혹한 폭력을 겪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병과 사회적 멸시라는 이중의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들의 삶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이 마을에는 김선규라는 젊고 열정적인 사회 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의사가 아닌 평범한 청년이었으나, 문둥이 마을 사람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이들에게 **‘차별 없는 세상’**을 약속하는 좌익 사상을 전파했다.

 

좌익의 **‘평등’과 ‘계급 해방’**이라는 구호는 문둥이 마을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구원과 같았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던 그들에게 **‘혁명의 동지’**라는 호칭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인간적인 대우였다. 그들의 좌익 활동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인간으로서의 복권을 위한 절박한 외침이었다.

 

김범우는 김선규와의 대화를 통해 문둥이 마을의 슬픈 서사를 깊이 이해했다. 특히 **‘문딩이 가시내’**라 불리던 순이의 운명은 김범우의 가슴을 쳤다. 순이는 병으로 온몸이 성치 않았으나, 맑고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김선규를 도우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우익 청년단은 문둥이 마을을 **‘빨갱이 소굴’이자 ‘부정한 곳’**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정현동의 지시를 받은 청년단은 마을을 급습하여 좌익 지도자 김선규의 행방을 묻기 위해 순이를 체포했다. 청년단은 순이에게 **‘빨갱이에게 협조한 죄’**를 뒤집어씌우고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그녀의 병든 몸을 혐오하면서도, 그녀의 순수한 영혼을 짓밟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순이는 고문 속에서도 김선규의 행방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은 이념을 초월한 인간적인 의리이자, 자신들에게 희망을 준 혁명에 대한 마지막 수호였다. 청년단의 잔혹한 폭력은 가장 약한 존재에게 가해지는 가장 비열한 폭력이었으며, 이는 벌교 민중에게 우익의 야만성을 각인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김범우는 이 비극을 기록하며 이념이 가장 약한 자에게까지 미치는 잔혹한 영향을 고발했다. 그는 문둥이 마을 사람들의 고통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계급 투쟁이었으며, 그들의 절규는 민족의 가장 깊은 상처임을 깨달았다. 그는 순이의 고독하고 비극적인 저항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이 시대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자 했다.

**"문딩이 가시내, 팔자도 참 험허게 변했다"**는 이 말은, 이념의 광기가 빚어낸 무수한 희생자들의 서글픈 운명을 압축하는 것이었다. 김범우의 펜은 가장 낮은 곳에서 짓밟힌 영혼들의 진혼곡을 기록했다.

10. 암약(暗躍)

태백산맥 1권의 이야기는 벌교를 둘러싼 좌우 세력의 최종적인 무력 충돌, 곧 암약(暗躍)의 단계로 치달으며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마무리된다. 읍내와 조계산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침묵의 폭풍 전야에 갇혔다.

 

염상진은 조계산 깊은 곳에서 인민유격대를 최종 점검하며 군사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완성했다. 그는 토지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운 무장 봉기 계획을 철저하게 다듬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좌익 행동대원들은 밤마다 읍내와 외곽을 오가며 지주들의 재산 목록, 경찰서의 무기 배치, 그리고 우익 청년단의 순찰 경로 등을 상세히 정탐했다. 그들은 비밀 연락망과 은신처를 완벽하게 구축했으며, 염상진의 단 하나의 지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염상진은 조직원들에게 **‘혁명의 성공’**만이 민중 해방의 유일한 길임을 끊임없이 주입했고, 그들의 열망은 숯막의 뜨거운 불길처럼 타올랐다.

 

정현동은 읍내에서 반격과 선제 숙청의 계획을 치밀하게 짰다. 그는 법률가로서의 냉철함을 발휘하여 좌익의 움직임을 전략적으로 분석했다. 정현동은 경찰서장, 미군정 고문, 그리고 읍내 유지들과의 긴밀한 비밀 회동을 통해 무기와 탄약을 확보하고, 좌익 인사들을 일제히 체포할 일제 검거령의 시기를 조율했다. 그의 암약은 철저히 계산된 정보전이었으며, 목표는 염상진의 조직이 봉기하기 전에 그 싹을 완전히 잘라내는 것이었다. 정현동의 저택 서재에는 밤마다 읍내의 상세한 지도와 좌익 연루자들의 명단이 펼쳐졌고, 그의 눈빛은 자신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승부사의 냉혹함으로 빛났다.

 

그리고 김범우는 이 모든 것을 중립의 펜으로 기록하며 가장 고독한 암약을 이어갔다. 그는 염상진과 정현동, 양측 모두에게서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좌익은 그를 나약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의심했고, 우익은 그를 좌익에 동조하는 위험 인물로 감시했다. 그러나 김범우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총칼의 시대를 증언하는 유일한 양심으로서, 좌우익의 모든 폭력과 위선, 그리고 그 아래 짓밟힌 인간의 고통을 숨김없이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당장의 승패를 좌우할 수는 없었으나, 먼 훗날 이 시대의 진실을 밝혀줄 강력한 증거가 될 터였다.

 

벌교는 이제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읍내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음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갯벌의 짠 내와 함께 피 냄새가 섞인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염상진의 열망과 정현동의 탐욕이 하나의 충돌 지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김범우의 암약은 진실의 횃불을 들고 그 피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노트의 마지막 장에 다가올 민족 상잔의 비극을 조용히 적었다. "밤이 깊었다. 이제, 벌교는 피를 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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