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赤)과 흑(黑)의 시대. 그녀의 사랑은 바닥 모를 늪 속으로 침몰하는가."
제5부 3권 - 바닥 모를 늪 속으로
제 3 편 바닥 모를 늪 속으로
1장 소식(消息)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내가 마주한 것은 해방의 환희가 아닌 '바닥 모를 늪 속'이었다. 그 늪 속을 헤매게 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이 전해져 오는 '소식(消息)'들이다. 소식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고 날아와 나의 심장을 매번 찢어놓는다. 이념의 대립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소식, 굶주림과 혼란이 도성을 뒤덮었다는 소식, 그리고 가장 견디기 힘든 소식은... 길상과 나의 아들 연이에 관한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은둔하며 상황을 관망하고 재건을 준비하고 있지만, 나의 촉수는 이 나라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한다.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주었으나, 동시에 우리를 '적'과 '아군'으로 갈라놓는 비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광기를 보이고 있다. 이 모든 혼란의 소식들은 나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준다. 나는 일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이제 우리 스스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이 늪의 바닥은 대체 어디인가.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소식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길상은... 나의 길상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 즉 '적(赤)'의 이념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가 선택한 길은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것이었겠으나, 그 길이 이 나라를 둘로 가르고 나의 심장마저 갈라놓을 줄이야. 나는 그의 순수함과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를 막을 수 없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느낀다. 그의 소식은 나에게 칼날처럼 박힌다. 그는 더 이상 만주의 나의 동지가 아니며, 이념의 전선에서 마주칠 수도 있는 냉정한 타인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아들 연이 또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좇고 있다는 소식. 어린 석이는 나를 따르지만, 연이는 자신의 신념을 따라 이미 험난한 길로 접어들었다. 자식의 운명을 지켜보는 어미의 마음은 쇠도 녹일 만큼 타들어 간다.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부와 힘을 축적했지만, 결국 그들의 영혼은 나의 손길을 벗어나 시대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었으나, 그들의 선택은 오롯이 그들 자신의 몫이다.
이 모든 소식들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이 땅에 돌아온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자문한다. 만주에서 철저한 기만과 고독 속에서 투쟁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을까. 그곳에서는 적이 명확했으나, 이곳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적으로 변해간다. 나는 이 바닥 모를 늪 속에서 나의 혼백이 침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 나의 역할은 무너진 조국을 재건하는 것이지만, 재건의 첫걸음은 이 늪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2장 산행(山行)
소식들이 가져다준 절망과 혼란 속에서,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끊고 '산행(山行)'을 감행했다. 산은 언제나 나의 안식처이자, 내가 잃어버린 평정심을 되찾는 성소였다. 인간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추악함이 이 산 아래에서 아우성치고 있지만, 산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나는 이 산의 웅장한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재정비해야 했다.
산길을 오르는 것은 나의 지난 삶과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과 인내의 연속이었고, 정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육체가 겪는 고통을 통해 나의 정신적인 고뇌를 잠재우려 했다. 차라리 육체적인 고통이 이념적 갈등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고통보다 견딜 만했다. 나의 다리는 굳건했고, 나의 심장은 차가웠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나의 모든 감정을 통제하고, 오직 나의 사명만을 남겨두었다.
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나는 이 나라의 굽이치는 산맥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산들이 곧 우리의 역사이며, 우리의 영혼이다. 수천 년 동안 변치 않고 이 땅을 지켜온 산들을 보며, 나는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이념적 분열과 갈등 역시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한때의 소란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란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조국의 미래가 갈라진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금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산행 중 나는 뜻밖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나의 옛 동지, 혹은 현재의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해줄 수 있는 비밀스러운 인물과의 조우. 산은 가장 안전한 은신처이자, 가장 치밀한 약속 장소였다. 나는 그들과 짧고 간결한 대화를 나누며, 늪 속의 실체를 파악했다. 나의 재건 계획을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순간이었다. 이 산행은 단순히 휴식이 아니라, 나의 다음 수를 위한 전략적인 행보였다.
나는 산을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나는 이 늪에 빠져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산처럼 굳건하게 서서, 이 혼란을 극복하고 조국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나의 내면은 이미 산의 침묵과 강인함으로 채워졌다. 나는 다시 도시의 소란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냉철한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3장 모화 일가(一家)
나는 재건을 위한 자금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 시대의 새로운 권력층, 즉 '모화 일가(一家)'와 마주해야 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축적된 부와 권력을 해방 후의 혼란을 틈타 새로운 기득권으로 둔갑시키려는 가장 위험하고 추악한 존재들이다. '모화'란 결국 썩어가는 시대의 잔해를 상징하며, 나는 이들을 상대하며 바닥 모를 늪의 가장 끈적거리는 진흙을 밟아야 했다.
모화 일가는 겉으로는 해방을 환영하는 듯했지만, 그들의 속셈은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념적 갈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권력에 빌붙어 더욱 거대한 부를 축적하려 했다. 그들의 탐욕과 이기심은 일제보다 더 무섭고 교활했다. 나는 그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민낯을 읽어내야 했다. 나는 그들을 경멸했지만, 그들의 힘과 자산을 나의 재건 계획에 역이용해야 하는 이 현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나는 모화 일가와의 거래에서 철저하게 가면을 썼다. 나의 목표는 그들의 자산을 합법적이면서도 은밀하게 빼앗아 조국의 재건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탐욕을 자극하고, 그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이것은 만주에서 일제의 눈을 속이던 나의 투쟁의 연장선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나의 동족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쓰라렸다.
나는 그들의 화려한 연회와 겉치레 속에서 고독을 느꼈다. 그들은 나를 '최 사장'이라 부르며 존경하는 척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시기와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에게 단 하나의 진실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돌처럼 단단했고, 나의 표정은 차가운 강물처럼 평온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그들의 게임에 잠시 참여할 뿐이다.
모화 일가와의 교류는 나에게 이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해방은 왔지만, 진정한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다. 탐욕과 이기심은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으며, 나는 그 모든 추악함 속에서 순결한 조국의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한다. 나는 이 늪에서 발을 빼기 위해 그들의 진흙을 묻혀야 하는 아이러니를 감수한다. 나의 투쟁은 더럽고 고독하지만, 나의 목표는 오직 순결한 조국이다.
4장 적(赤)과 흑(黑)
이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적(赤)과 흑(黑)'이라는 두 개의 색깔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광기이다. 적은 공산주의를 상징하고, 흑은 그에 맞서는 반공 이념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이 두 색깔 중 하나를 강요받고, 이분법적인 논리에 갇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인다. 나는 이 두 색깔 모두가 이 나라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극단임을 안다. 나는 조국을 위한 '민족'이라는 유일한 색깔을 지지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이 광기 속에서 힘을 잃는다.
나의 고통은 이 이념적 대립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길상은 '적'의 붉은 깃발 아래 서 있다. 그는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세상을 꿈꾸지만, 나는 그 꿈이 가져올 피의 대가를 알고 있다. 그의 붉은 열정은 결국 이 나라의 짙은 어둠 속으로 그를 끌고 갈 것이다. 나는 그를 막을 수 없다. 나의 사랑은 그의 선택 앞에 무력하다.
나는 이 혼란 속에서 실용적인 '흑'의 논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흑'은 기존의 질서와 안정을 대변하지만, 그 안에는 모화 일가와 같은 탐욕스러운 부패 세력들이 숨어 있다. 나는 그들의 힘을 빌려 '적'의 무분별한 폭력과 혼란을 막고, 조국의 최소한의 기반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생존 전략이다. 나는 '흑'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무모함으로부터 조국의 재건 시간을 벌기 위해 그들의 방패 뒤에 잠시 숨는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이 두 이념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나의 모든 행동은 '적'에게는 배신으로, '흑'에게는 기만으로 비칠 수 있다. 나의 고독은 여기에서 극대화된다.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진심을 드러낼 수 없다. 나의 유일한 동지는 오직 조국 해방이라는 '순결'한 대의뿐이다.
적과 흑의 대립은 이 나라를 바닥 모를 늪 속으로 더욱 깊이 끌고 간다. 이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으며, 결국 우리 민족의 가장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나는 이 비극의 한가운데서, 나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나는 이 두 색깔이 아닌, 조국이라는 백색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고통과 희생은 그날을 위한 필수적인 대가임을 나는 믿는다.
5장 사랑의 피안(彼岸)
길상... 나의 길상. 그는 이제 나에게 '사랑의 피안(彼岸)'에 있는 사람이다. 피안이란 저 언덕, 혹은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는 나의 손이 닿지 않는 이념의 경계 너머에 서 있다. 우리는 같은 조국을 바라보지만,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나의 길은 현실적인 재건과 생존이며, 그의 길은 이상적인 혁명과 투쟁이다. 이념의 바다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 나는 그 바다를 건널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이제 현실적인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의 순수한 신념으로 남았다. 나는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쳤고,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민중을 위해 바쳤다. 우리의 희생의 방향은 달랐으나, 그 근원은 이 나라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는 점에서 같았다. 나는 그의 숭고한 선택을 존중하며, 그가 걷는 길이 비록 나에게 고통을 주더라도 그의 뜻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길상과의 재회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적과 아군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의해 서로를 외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우리의 만남은 둘 중 하나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 그의 신념을 지키기를 원한다. 나의 사랑은 이제 소유가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고독한 염원이 되었다.
사랑의 피안. 그곳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념도, 계급도, 시대의 폭력도 없는 순수한 영혼의 세계. 나는 잠시 고독한 밤에 눈을 감고 그를 떠올린다. 그의 따뜻했던 눈빛, 그의 강인한 어깨, 그리고 그의 순수했던 영혼. 그 기억만이 내가 이 늪 속에서 침몰하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마지막 끈이다.
나는 이 혼란스러운 시대가 끝난 후, 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음을 역사가 증명해 주기를 바란다. 나의 사랑은 현실의 슬픔을 넘어섰고, 이제 영원한 피안에서 그와 함께할 것이다. 나는 그의 투쟁을 존중하고, 나의 투쟁을 완수한다. 이 모든 고독과 희생은 우리의 후손들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6장 옛날의 금잔디
나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 평사리의 '옛날의 금잔디'를 다시 찾아갔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그 너른 마당, 풍요와 평화가 가득했던 그 초록의 잔디밭. 그곳은 나에게 순결했던 시절의 기억이자,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황량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다.
금잔디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부유함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 평화, 그리고 민족의 뿌리를 지키려는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의 굳건한 의지였다. 나는 그 잔디밭에서 뛰놀았고, 그곳에서 나의 운명적인 삶을 시작했다. 이제 금잔디는 사라지고 없지만, 나는 나의 마음속에 그 잔디를 다시 심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재건의 상징이다.
나는 텅 빈 옛터에 홀로 앉아 땅을 만져본다. 이 땅은 나의 피와 땀, 그리고 나의 가족들의 영혼이 스며 있는 곳이다. 나는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잃었으나,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금잔디가 사라진 폐허 위에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심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옛날의 금잔디'는 나에게 과거를 잊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재산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과 순수성이었다. 이념적 갈등이라는 늪 속에서, 사람들은 본질을 잊고 서로를 파괴한다. 나는 이 금잔디를 기억하며, 우리의 투쟁이 결국 그 순수한 시절의 평화를 되찾기 위함임을 상기한다.
나는 이 옛터에서 길상과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그와 함께 했던 순수했던 시절. 그 금잔디 위에서 우리는 미래를 꿈꿨었다. 이제 우리의 꿈은 너무나 다른 형태로 현실이 되었지만, 그 근본은 변치 않았다. 나는 그의 몫까지 이 땅에서 살아남아, 황량한 옛터를 다시 풍요로운 금잔디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이 바닥 모를 늪 속에서 나의 혼백이 방황하지 않도록, 나는 이 옛날의 금잔디를 나의 굳건한 뿌리로 삼는다. 나는 최서희이며, 나의 투쟁은 이 고향 땅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제 4 편 순결과 고혈
1장 만산(滿山)은 홍엽(紅葉)이로되
가을이 왔다. 내가 늪 속에서 헤매는 동안, 시간은 쉼 없이 흘러 '만산(滿山)은 홍엽(紅葉)이로되'라는 장엄하고도 슬픈 풍경을 펼쳐놓았다. 산 전체가 붉은 잎으로 물든 이 풍경은 나에게 단순한 계절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피로 물든 조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붉은 단풍은 순결한 희생의 피이며, 그 아름다움은 고통스러운 '고혈(膏血)'의 대가이다.
나는 이 붉은 산을 보며, 나의 아들 연이와 길상을 생각한다. 그들의 열정적인 투쟁은 저 붉은 단풍처럼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풍은 곧 낙엽이 되어 땅으로 떨어진다. 나는 그들이 이 붉은 열정 속에서 스러지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 붉은 빛은 아름답지만, 그것이 곧 죽음과 소멸을 예고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비극적인가.
순결과 고혈. 이 제4편의 제목은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나는 나의 순결한 사명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피땀 흘려 희생했다. 만주에서의 투쟁도, 모화 일가와의 더러운 거래도, 그리고 길상과의 고독한 이별도 모두 이 순결한 대의를 위한 '고혈'이었다. 이 붉은 산은 나에게 그 모든 희생이 헛되지 않음을,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고혈이 요구될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한다.
나는 이 붉게 물든 산을 배경으로 나의 재건 계획을 치밀하게 실행에 옮긴다. 이 혼란의 시기에, 가장 냉철하고 단단한 의지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붉은 단풍은 나에게 일종의 결의를 다지게 한다. 나는 이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만산홍엽(滿山紅葉). 이 장엄한 풍경 속에서 나는 나의 마지막 투쟁을 준비한다. 이 붉은 산이 피로 물든 조국이 아니라, 희망과 재건의 붉은 열정으로 타오르는 조국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최서희이며, 나의 순결한 투쟁은 이 고혈의 시대를 넘어 마침내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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