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12 대장금3 세상의 모든 비극을 뒤로하고, 어린 장금은 덕구 아저씨 댁에 맡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사라졌고,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 있었다.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이 지탱해야 할 슬픔과 비밀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칠흑 같은 어둠이 덕구 아저씨 댁을 집어삼키고 있던 어느 밤이었다. 산골을 벗어나 읍내 변두리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장금은 모든 소리에 예민해져 있었다. 곤히 잠든 듯 보였던 덕구 아저씨는 매일 밤 막걸리 몇 사발로 세상을 잊으려 했고, 그 취기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집안의 실세이자 이 모든 불운의 그림자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덕구 아줌마는 달랐다. 그녀는 단잠을 자는 법이 없었고, 짐승의 기척 하나에도 번개처럼 몸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신경을 지니고 있었다.. 2025. 11. 30. 태백산맥10권 수정 25. 피아골: 최후의 거점, 극한의 고난지리산의 뼈대가 굽이치는 가장 깊은 골짜기, 아홉 권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여정 끝에 빨치산 대원들이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피아골(Pia-gol)'이었다. 그 이름 자체가 이미 비극을 예고하는 듯,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이곳은, 이제 살아남은 혁명가들의 최후의 성채이자 곧 무덤이 될 지옥이었다. 험준한 산세와 울창한 원시림이 겹겹이 방패를 이루어 토벌대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던 천혜의 요새였지만, 그 완벽한 고립은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 즉 극한의 추위와 만성적인 식량난이라는 족쇄로 그들의 목을 조여왔다.계절의 경계가 무너진 듯, 피아골의 겨울은 끝나지 않는 영겁의 형벌이었다. 공기는 폐 깊숙한 곳까지 날카롭게 파고드는 칼날이었.. 2025. 11. 30. 여명의 눈동자5권 수정 1. 고문 (拷問)암흑이었다. 최대치 조직의 심장부와 연결된 박재호는 경성 외곽, 폐교된 일본군 막사의 지하 취조실로 끌려왔다. 그곳은 빛이 죽어버린 공간이었다. 공기는 곰팡이와 핏물 냄새로 끈적거렸고, 철문은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둔탁하게 닫혔다. 박재호의 운명은 그 순간부터 오직 고통으로만 채워졌다.그를 맞이한 조사관은 미군정 경찰의 핵심 인물인 조선인이었다. 이름은 김호준.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악명 높은 고등계 형사로, 해방 후 '반공 투사'로 변신한, 가장 끈질긴 악의 잔재였다. 김호준의 얼굴에는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없었다. 그의 눈빛은 박재호를 이미 산송장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최대치의 남한 내 거점과 조직망,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인물들의 이름을 원했다. 그것은 곧 여옥과 하림의 목숨이.. 2025. 11. 30. 한강작가 소년이 온다. 1장 어린 새1980년 5월, 그해 봄은 평범했던 중학교 3학년이었던 동호에게 너무나 잔인한 계절이었다. 동호는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되어 소년 티를 겨우 벗으려던 열다섯 살이었다. 광주 중흥동의 낡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와 정미 남매와는 아주 가까웠었다. 정대는 동호와 같은 학년이었고, 둘은 방과 후면 나란히 앉아 입시 준비를 했었다. 늦은 저녁까지 교과서를 펼쳐놓고 미래를 이야기하고, 뻔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공유했었다. 그날들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었다. 책상 위에는 늘 정미 누나가 깎아준 연필과 어머니가 만들어준 김밥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하지만 그 평범함은 어느 날 갑자기 산산조각 났다. 처음 시신을 본 날은 잊을 수 없다. 광주역 앞에서 총에 맞은 시신들이 리어카에 실려, 시위대의 맨 .. 2025. 11. 30. 여명의 눈동자9 여명의 눈동자 9권 오디오북 스크립트: 1. 도망 (逃亡)전쟁의 거대한 폭풍은 가장 순수했던 사랑마저 잔혹하게 갈가리 찢어놓았고, 삶의 모든 존엄성과 희망은 이미 잿더미 속에 묻힌 채,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숨 막히는 '도망'이라는 절망적인 행위뿐이었던 것이었다. 1952년의 한반도는 피와 이념의 광기로 얼룩진 거대한 감옥,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공포와 불신 속에 갇혀버린 비극의 땅이 되었던 것이었다. 장하림과 윤여옥, 그들의 숙명적인 사랑은 이 시대의 가장 험난한 미로 속으로 던져졌고, 그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그리고 반드시 지켜내야 할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려야 했던 것이었다. 그들의 도망은 단순한 육체의 이동을 넘어, 인간성을 말살하려는 시대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영.. 2025. 11. 27. 여명의 눈동자 8권 여명의 눈동자 8권 오디오북 스크립트: 1. 악마의 얼굴 (惡魔의 얼굴)전쟁은 인간의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내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악마의 얼굴을 드러내게 했다. 1952년, 휴전선 주변은 증오와 배신, 그리고 광기가 지배하는 땅이 되었다. 장하림은 의사로서 생명을 구해야 하는 숙명 속에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과 끊임없이 마주쳤다. 그는 때로는 천사였지만, 전쟁은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하림은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성이 완전히 파괴되는 지옥이었다. 포로들은 이념의 희생양이 되었고, 서로를 증오하며 싸웠다. 하림은 포로들의 육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영혼의 깊은 상처까지 치료해야 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치료를 거부하는 포로들의 눈빛에서 광기를 읽었고, 그들.. 2025. 11. 27. 이전 1 2 3 4 5 6 7 ··· 19 다음